“연비는 아직도 냉궁에 있습니까?”
태후의 말에 황제는 처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담하달까…
냉궁에서 머리를 늘어뜨린 채 한없이 울기만 하는 여자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그는 몰랐다.
“아직도 아이 이름을 부릅니다.”
황후는 따로 있지만 그가 마음에 두고 연모하는 이는 연비였다. 하지만 연비는 궁으로 들어오기 전 약혼자와 정을 통해 아이를 가지고 억지로 궁에 들어왔다.
그녀는 황후의 엄한 명을 받고 냉궁에 유폐되었다.
이것만큼은 왕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인의 일은 여인에게 맡겨두라는 말에 맡겼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사라져버렸고, 연비는 정신을 잃고 있다가 최근 회복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애 이름이 무엇인지 폐하는 아십니까?”
딴 남자의 아이다. 자신의 씨가 아니니 상관없다 싶었던 황제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참 귀여워했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손 발이 어찌나 귀엽던지.
“한이.”
“이제 나이가 한 열여덟 정도 되었겠지요?”
“네…”
황제는 삶의 의지인 아들을 잃고 정신조차 잃은 연비가 가엾었다. 억지로 데려온 것이 문제였을까?
하지만 그대로 놔두었다면 황제의 정신이 나가버렸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를 붙잡아 줄 여자가 필요했다.
그때의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빙궁에서 아이가 나올 때가 되면 연락 준다 하였는데…얼마 전 빙궁주가 보낸 까마귀 발톱에 이런 것이 있더군요.”
태후가 침울한 황제를 달래면서 얇고 긴 비단 천을 건넸다.
“새로운 빙궁주를 인사보내오니 부디 인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연비도 좋아할 것입니다.”
“……”
황제가 한숨을 푹 쉬었다.
“빙궁…이라고 하면 연비는 더 싫어할 겝니다. 연비의 오라비와 약혼자가 빙궁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서 떠났다가 전사했지 않습니까…”
“아니, 아이가 나올 때가 되니 연락온 게 아니겠습니까?”
“어머님은 모를 말씀 하십니다.”
황제가 말했다.
“천하에 황제가 못 가는 곳이 없어, 이때껏 연비를 위해서 강호 대지를 두루 밟았는데…빙궁따위에서 아이를 길렀을리가요…보통 아기라면 거기서 다 죽어나온답니다…설녀는 아이를 키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태후가 말을 더 이으려는 순간, 태후궁에 요란한 소리가 들리다니 이내 황후가 들어와 두 사람에게 예를 올렸다.
“어서 오오. 황후.”
황제와 태후의 인사에 황후는 참으로 단정하고도 절제된 태도로 황제에게 옥반지 하나를 바치었다.
“그것은 무엇이오?”
황제와 황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그러다가 한참만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리높여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