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십시오.”

여소장은 맘에는 안 들었지만 친척 모임의 주최자 노릇을 해야했다.
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아내는 나다희 건을 들어 그를 협박했다.

“당신이 그 여자를 노리지 않았다고 증명할 수 있어요?”

이때까지 그녀 혼자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그에게는 굉장히 가혹한 의심이었다. 물론 그는 간지용의 후원 하에서 나다희를 가져볼까 몇번이고 생각해봤다.
간지용의 그녀를 공유하면 어떨까…?하고.
하지만 그는 이내 성가신 아내에게 주의를 돌리고 말았다.

그녀는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알아차리면 위 청에 소를 넣어서 자신의 군복을 벗겨버릴 것이다.그는 그것이 제일 두려웠다. 평민으로서 그녀와 결혼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애를 썼는데!
그녀와의 로맨틱한 첫만남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그도 알고 아내도 알고 있었다. 다만 아내는 남들에게 자랑 거리를 하나 더 만들기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여보. 내가 왜 하필이면 그 애를 노린다고 생각하는 거요. 내 주변에도 여자가 많이 있어요. 근데 어째서 그 이상한 여자를 건드린다고 생각하는 거지?”

“쉬우니까.”

아내가 톡 쏘듯이 말했다.

“당신은 쉬운 여자라면 몰라도 어려운 여자는 기피하는 겁쟁이야. 지금까지 늘 그래왔잖아요. 얼핏 보면 쉬워보여서 그 아이를 노린 거겠지. 생각보다 어려워지니까 발 뺀 거고. 당신, 지금 도망가면 절대로 절대로 내 얼굴 볼 생각 안 하는 게 좋을 거에요! 주인 역할을 충실히 하란 말이에요. 그리고…이 연회에서 초를 칠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말아요. 초 치면…그 여자 찾아가서 머리끄댕이를 잡아줄테니깐!”

“아니, 그러니까 그 여잔…”

“소문이라고들 하지만, 내 귀에 들린 이상.”

아내의 독재 아닌 독재에 여장군은 결국 포기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알았소. 상견례나 무사히 합시다. 그 친군 고아니 오늘 연회가 소개장이 되겠군.”

“…문제는 사위네요. 괜찮을까…”

“괜찮지 않으면 먼저 돌려보내버리고 우리들끼리 한잔 하면 되지.”

여장군은 겨우 체면을 구기지 않게 되었다면서 기뻐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님들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첫번째 여장군의 종조부, 이복 형제와 자매들, 그리고 그의 자녀들과 손자들…
뭐 이렇다할 사람은 없었다. 여장군은 평민 출신이어서 별다를 예의범절들은 갖출 타입들이 아니었다.
고모할머니 정도가 유일하게 귀족이었지만 그녀는 죽고 없었다.
여장군은 압박감을 느꼈다. 죽었다고는 해도 그녀의 유령이 살아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시길은 고모할머니의 유령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시길이 들어왔다. 경인의 손을 잡고.

“오, 보기 좋구나. 젊은이들.”

종조부가 칭찬을 했다.

“요즘 보기 드문 인기인을 직접 보게 되어 영광일세.”

여장군의 배다른 형님이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요.”

반짝반짝하는 그 얼굴을 찍겠다면서 종조부의 손자들이 시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시길은 환히 웃으면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이쯤 되면 상견례가 아니라 연예인 행사 현장쯤으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시길의 안 보이는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까 전, 여장군의 집으로 들어오기 전 깡패들에게 둘러싸여 협박을 받았던 것이 기억 나서였다. 그는 겁쟁이는 아니었지만 갑작스런 공격으로 인해서 뇌전증이 다시 시작되려고 있었다.

“아 물론이지. 얼마든지 찍어도 좋단다. 우린 어차피 친척이 될테니까.”

부들거리는 손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시길이 우아하게 대답했다.
그의 눈동자는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여있는 포도주병으로 향했다. 저 붉은 것을 마시면 좀 가라앉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부산한 움직임이 다 끝난 후 그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 듯 앉자마자 집사에게 부탁해 눈치도 없이 병을 따 와인을 한 입에 털어넣었다. 하얀 테이블 보에 그가 약간 엎지른 붉은 흔적이 남았다.
분위기가 금방 싸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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