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오다시피했던 다희는 기가 죽었다. 배우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경인이 거의 눈을 부릅뜨듯이 하면서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다희는 어린 시절 그녀를 몇번 본 적이 있었다.
기억에는 없었지만 경인도 그녀가 지용의 후견인으로 왔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랬기 때문에 시길이 그녀를 부르자고 한 이후부터다희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 내내 부루퉁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내가 왔어. 오, 이제 정신이 들어?”

과장스럽게 말하는 다희의 말에 시길은 다시 침울해졌다. 그녀가 자신의 기억 속의 여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 덕분에 경인이 눈에 띄지 않게 시길을 꼬집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난 어째서 평범한 취향이 아닌 걸까…’

아마 머리가 아파서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일반적인 감각을 넘긴 것이라고…

“누나. 노형은요?”

“밖에 있어. 오라고 할까?”

“네.”

아무래도 셋이 있는 것 보다는 넷이 있는 게 좋으리라 판단한 그와 경인이었다.
경인이 재빨리 구진을 불러오는 동안 시길의 목과 얼굴을 붙들고 다희가 나직이 말했다.
아마 경인이 나가는 순간을 이용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난 네가 없으면…”

그리고 순간적으로 튕겨나가듯 구진이 들어오자마자 태도를 바로 했다.
경인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구진은 순간적으로 파악이 된 듯 이내 눈썹을 찌푸렸다.

“그래…잘 있었냐.”

구진의 말에 시길이 대답했다.

“전 역시 형님이 안계시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형님은…?”

“똑똑히 못한 네 머리에서 나오는 인사말이라도 나쁘진 않구나.”

구진은 그렇게 대답한 후 다희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왜 그래?”

다희의 말에 구진이 말했다.

“얻어맞고 싶지 않으면 빨리 나가. 경인양도 자리를 좀 비켜주세요.”

“나한테 그런 말을 어떻게…”

“나가!”

두 사람이 나가자 구진이 시길에게 물었다.

“둔한 놈.”

“?”

“어떻게 그렇게 사람 마음을 못 읽냐.”


“음…?”

“난 다희하고 결혼할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 조금씩 더 다가가고 있지.너만 없으면 다희는 온전히 내 여자가 되어줄텐데..왜 하필 지랄을 하는 거냐.응?”

구진이 양복 주머니에서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꺼내 시길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뭔지 아냐?”

“칼이네요.”


“날을 아주 잘 세워놓았지.”

구진은 그렇게 말한 후 시길의 머리를 휘어잡아 흔들었다.

“다음에 한번 더 그러면 나이프를 네 녀석 가슴팍에 꽂아주마. 난 더 이상 왕립연출가가 아니니까 꿀릴 것도 없어. 꿀릴 게 있다면 저 여자 하나 뿐인데, 네놈하고 다희가 한번만 더 그러면 먼저 널 죽이고 그 다음에 다희를 죽여버릴 거야.”

“우리가 뭘 하건…”

대답하다가 시길이 의미있는 눈짓을 했다. 구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애정행각만 하지 않으면 뭐든지 용서해주마. 마침 다희에게 꼭 맞는 상대역이 필요하니…”

“그럼 받아주시는 군요.”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라. 너도 회복해야 할 테고, 난 나대로 지용씨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거든.”

“고맙습니다…”

시길은 어쨌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내일 모레면 상견례가 있을 것이고 아름다운 경인과 자신은 결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극단이 완전히 만들어지면 구진은 그를 다희의 상대역으로 올려줄 것이다.
그를 취미생활 삼아 익혔던 연기를 이끌어주었던 것이 다희이니, 다희는 끝까지 그의 상대역이어야 했다.
다만 이 생각을 할 때 시길은 왜 자신이 그녀에게 그토록 집착하는데 알지 못했다.
그건 그가 죽는 순간까지 계속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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