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길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희에게 문자를 남겼다. 아마 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남았다.둘 사이에. 뭔가가.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무언가가.
“……”
다희는 무심코 주머니속의 휴대폰을 찾았다. 구진이 물었다.
“휴대폰은 왜?”
“아, 맞아. 집에 두고 왔었지…깜박했네. 하긴 갔고 왔어도 충전해야 했을테니까…”
구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벌써부터 스타병 걸려서 큰일났다.”
“응? 난 원래 스타 아니었어?”
장난스럽게 팔짱을 끼는 다희에게 구진이 이마에 손을 댔다.
“일반 스타 말고, 월드스타!”
“…어머, 진심인가봐?”
“그럼 너는 집에서 그냥 가정주부하려고 했어? 타고난 재능을 무시하다니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인데?”
순간적으로 다희의 얼굴이 샛노래졌다.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동안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물 흐르듯 흘러간 시길에 비하면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서 다희가 어릴 적부터 받아온 훈련은 지독한 것이었다.
“그래, 월드 스타 가자고! 좋아.”
다시 다희는 그의 팔짱을 끼었다. 그때 뭔가 도도록! 하는 소리가 났다.
비퍼였다.
연출가인 구진과 톱스타인 그녀에게 비퍼를 보낼 사람은 단 세 사람.
시길, 단장, 감독.
그리고 그 문자는…전혀 알 지 못했던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나마 일찍 도착했군.”
여왕님이 돌아가시기 3일전에야 대공연장에 도착한 그들에게 왕자가 말했다.
“그대 둘이 혼인한다는 말은 이제 들었네만.”
“…저희 꼭 결혼합니다. 그러니 그 말씀은 없는 걸로 해주시지요.”
다희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왕자에게 구진이 간곡하게 말했다.
“아니, 꼭 결혼 사기죄를 말하는 건 아니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게. 결혼은 하면 될 거 아닌가. 나하고.”
순간적으로 다들 쇼크를 받았다. 모여든 단원들 앞에서 구진의 결혼이야기도 믿기 힘들었지만 왕이 될 남자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후궁으로 받아들이겠어. 그러니 다희. 내 마음을…”
다희의 허리에 손을 감은 왕자가 포기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걸 깨달은 구진은 아예 허리띠를 풀고 대리석 바닥에 엎드렸다.
“없는 걸로 해주십시오. 다희는, 다희는 꼭 제 손으로 세계최고의 배우로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뭐든지?”
실소가 왕자의 입에 걸렸다.
“뭘하던지 내가 그대보다 그녀에게 더 잘 해줄 수 있는데…”
“아닙니다. 배우를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 이 두가지를 왕자님은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껏 첩으로 들어간다면 그 재능은 사장되어버립니다. 그녀의 재능을 위해서 왕자님이 그녀를 포기해주십시오.”
“내가 그녀를 맘에 둔 것이 그 재능때문이 아니다…자네 지금 날 모욕한 건가?”
왕자가 다소 흥분했다. 그리고 구진이 이어서 말했다.
“제가 여기서 1000일을 굶고, 1000일을 무릎 끓어도 안된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다희를 돌려받는다면…”
시길이 그때 다시 다희에게 문자를 넣었다.아무도 그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다는 사실을 몰랐다.
다희는 왕자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고, 그의 손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그 문자를 읽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스로 말했다.
“왕자님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전 왕궁에 있지 못할 겁니다. 구진과 함께 가겠어요.”
“다희…”
“왕자님이 저희 연극을 보고 마음이 안정이 되셨었다는 말만 들어도 좋네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하겠습니다. 그리고 황상이 되시면 꼭 돌아오겠습니다. 훈장 타러 꼭 돌아올테니…기다려주셔요.”
“다희…”
결국 왕자는 다희를 포기했다. 마지막 연극에 다희는 주연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연출인 구진도 그냥 파악만 할 뿐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시길은 모든 것이 정리되자 극에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영지로 돌아갔다.
마지막 인사도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다 제각기 길로 가는 듯 했다.
그리고 천만원과 다이아몬드를 집어던지고 나갔던 그들의 이야기는 부풀려져 왕자에게 대든 딴따라들이라는 내용으로 와전되어 그들의 최후를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고 말았다.
Ps. 밑에 태그 달린 류보프..라는 말은 니진스키를 두고 디아길레프와 갈등을 빚었던 러시아 류보프 황자 이야기입니다...디아길레프도 써놨는데, 언제 날라갔는지....
뭐, 모티브를 따왔으니 나다희- 니진스키 위치에 놓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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