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게 아니라면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없어.”

극단의 예술단장이 투덜거렸다. 그리고 감독에게 힐난의 눈초리를 보냈다.

“자넨 제 정신인가? 여긴 개인 극장이 아냐.”

“…하지만…”

“뭐가 하지만. 이야. 당장 두 인간 데려와!”

단장이 죽 둘러선 배우들에게 외쳤다.

“다음 공연이 코 앞인데 이따위 짓을 하다니.”

“……”

다들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 시길이 말했다.

“그럼 데려오면 되는 겁니까?”

“…말이라고 하냐.”

단장이 그의 신분을 알고 난 이후부터 극단에서는 그에게 최고로 조심하고 있었다.
누가 뭐라든 그는 귀족이다. 연극을 한다는 것이 좀 어울리진 않지만, 기존 배우에게도 작위를 주는 마당에 원래 귀족이 연기를 한다는 건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럼 데리러 갔다오겠습니다.”

“잠…잠깐만…”

감독이 그를 불러세웠다.

“어디 갔는지도 모르잖아.”

“핸드폰 번호는 압니다.”

그 말에 단장이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누구나 다 알아.”

“제가 가는 곳에는 항상 누님이 있지요. 데리고 오는 건 어렵잖아요.”

그의 망상에 가까운 대답에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건 맞는 말이긴 했다. 다들 구진과 다희가 그의 병문안을 가기 위해서 서 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경인이 떠난 순간, 다희가 들어왔고…
그때 정신이 들었던 시길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자…잠깐만]

[역시 날 찾아왔군요. 누님은 항상 나를…]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정신을 잃은 그를 보고 구진이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뭐라는 거야. 저놈이.]

[날 사랑하고 있다고 했어.]

다희가 마치 독심술을 하듯, 홀린 것처럼 그렇게 대답했다.

[아무 말도 안 했어. 저놈은 그냥 속닥거리기만 했다고. 너도 바보가 됐군!]

노구진의 짜증에 다희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 속삭임 하나가 너의 밀어보다 더 달콤해.]

[흥!]

그 두 사람이 그렇게 시길의 손을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극단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우아. 삼각관계였어!]

연출 막내의 외침에 그들의 시선이 세 명에게 꽂혔다.

[빅뉴스다.빅뉴스.]

누가 봐도 그 상황은 고전적인 삼각관계였고, 멜로드라마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시길은 다희의 상대역으로 낙점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죽 노구진 연출, 민시길, 나다희 주연으로 연극이 굳어졌다.

단장이 짜증을 내는 이유는 그것이었다. 기존의 스타들을 제끼고 올라선 자리라면 관객들도 거기에 호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스타급들이 갑자기 개인 사정을 내세우면서 후임도 없이 사직한다면…
왕립극장의 꼴이 말이 아니다. 

후임을 세워놓고 나가도 전성기를 맞기 힘든 상황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특히 이번 공연은 여왕님도 지극히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시길의 말은 단장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저도 이번 달에 은퇴할 건데요…”

“뭐!”

단장의 노호성과 동시에 엄청난 욕설이 터졌다.

“다시 말해봐. 이 후레자식아!!!!이 정신 없는 상황에 폭탄을 던져!”

“…에, 결혼하고 영지를 물려받을 거라서요…죄송합니다.”

#배우의옆얼굴 #창작 #불펌금지 #도스토옙스키모사 #백치오마쥬 #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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