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길은 경인과 헤어진 후 극단으로 돌아왔다. 다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장실의 문은 북문과 서문 동문과 남문으로 되어 있어서 어느쪽으로든 들어올 수 있었다.

“왜 너 혼자 돌아와? 형은 어쩌고 너혼자 와?”

“…갈때도 저 혼자 갔어요. 노형은 한참 뒤에 왔다가 갔다고 하던데요.”

다희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내 본색을 알고 도망간 거야.”

“누나.”

“네가 날 버린 것처럼 그치도 날 버린 거라고!”

안정감을 잃은 다희의 손이 벌벌 떨렸다.

“너도 그 이야기를 들은 거지.”

“…누나.”

“간선생이라는 작자가 얼마나 비열하고, 얼마나 치사하고…”

그 말이 이어지고 있는데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다희가 있는 쪽의 문으로 구진이 들어왔다.
다희가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구진이 뒤에서 그녀를 안아올렸다.

“앗?”

그녀는 눈물을 채 닦지도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다. 눈물 그만 그쳐.”

“나 안 울었어! 어서 놔줘! 남들이 보면 어쩌려고!”

“남들이 보면 어때서요. 여왕님?”

구진은 그렇게 말한 후 그녀를 내려놓았다.

“무식하게 힘만 세서는…”

그녀의 말에 구진은 웃었다.

“울기만 하는 너는 어떻고.”

“……”

걱정 안되게 생겼어!라는 그녀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구진이 말했다.

“우리 고향으로 가자.”

“연극은 어쩌고.”

그녀의 말에 구진이 대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

“…그래서?”

“내가 장자라 상속권이 있지. 우리 재산 물려받은 다음 편하게 살자.”

“…우린 이미 먹고 살 직업이 있잖아. 그리고 거긴 안 가. 극단이 없잖아.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

구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난 누구누구 때문에 내 사랑이 방해받는 게 싫어.”

“…누구?”

다희는 잠시 그렇게 물어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 별 것도 아닌 걸로 속상해하다니…”

“재산은 꼭 저놈보다 많이 받을 거야. 돈이 많아지면 너도 그 간지용이라는 놈한테서 받은 피해의식이 사라질 거야.”

“…뭐든지 왜 돈으로 따지는 거야.”

다희는 그렇게 말한 후 자기 가방에서 천만원짜리 수표를 꺼내들었다.

“다들 그렇게들 생각하니까 여자한테 치근거리지.”

“…야, 그거 진짜 수표 아니지?”

구진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제 내가 어떻게 할 지 알겠어? 노구진. 난 네 돈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그녀가 가방에 들어있던 라이터로 수표에 불을 붙였다.

“착각하지마. 나한테 필요한 건 돈 따위가 절대로 아니야!”

그녀의 외침에 아직 퇴근하지 않은 배우들과 분장 담당이 달려왔다. 조연출들은 타들어가는 게 뭔지도 모르고 히스테리가 또 히스테리 부린다면서 다시 가버렸다.
그녀가 수표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드는 순간, 노구진은 다리가 풀러서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나 한동안 찾지마. 네가 본가로 갔다오는 것도 너 혼자 갔다와. 너네 집 돈 나한테는 한푼도 필요없어!”

“…누나. 모레 공연있는데…”

“어차피 그거 안하고 상속받으러 가기로 했잖아. 거기 나도 가는 걸로 해놔. 이 답답한 남자야.”

그녀는 구진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분장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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