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됐나?”

간지용의 물음에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되었지. 고모할머님이 돌아가셨네.”

“…상속조건은?”

“경인이가 시길이하고 결혼할 경우 재산의 3분의 1이 그 부부에게 떨어지네.”

“호화롭군.”

지용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자네가 물려받을 뻔한 재산이지. 비밀리에 만들어진 상속서류에는 자네와 다희가 결혼할 경우에는 재산의 2분의 1이 떨어지니까.”

“흥.”

지용은 차가운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미미하게 떨리는 손은 그의 탐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할머님이 내가 그 사실을 안다는 걸 모르셨더라면…”

“아니, 자넨…”

지용은 다희에게 환심을 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극도의 증오까지 불러 일으켰다.

 자신에게 주어진 장난감처럼 다희를 멋대로 조종했다.

[다희,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아라.]

다희는 그의 훈련 하에서 완벽한 인형처럼 자라났다. 팔을 꺾고 과장된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지용의 팔을 잡고 춤을 배우기도 했다.
완벽한 발성을 위해서 가정교사가 초빙되었고, 다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지용은 그녀를 취했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지.”

다희는 어릴 때부터 지용에게 속해 있었다. 그녀가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땐 가혹한 지용의 조련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치 야생의 사자나 호랑이가 훈련을 받듯, 그녀는 지용에게 모든 것을 훈련받았다.

“다희가 자넬 그렇게 증오하는 지 알아차리셨기 때문이지. 할머님 성격을 알지 않나. 일부러 확인까지 하러 불편한몸을 끌고 극장까지 가셨으니…”

[아범아.]

할머니는 여장군과 간지용을 불렀다.
주름진 상아같은 손가락으로 그녀는 팜플렛을 지용앞으로 던졌다.

[이게 무엇인지 내게 말해보거라.]

[뭐 말씀입니까?]

지용의 말에 노기어린 대답이 돌아왔다.

[왜 다희가 여기 나오는 거냐?]

[……]

[네가 후견인이니 틀림없이 알 거 아니냐.왜 그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왕립극단의 배우라는 사실을 왜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어머님…거기에는 복잡한 사연이…]

[내가 뒤풀이에 따라갔었다는 건 모르는구나. 그 아이가 내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해주었다. 그 아이는 내가 연극을 무척 좋아하는 할머니인줄 알고 줄줄이 다 말하더구나.  자기는 후견인을 피해 도망치면서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너 상속서류를 미리 보았던 것이지?]



간지용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너는 복잡한 가계사를 잘 알고 이용까지 하려고 했구나.]

고모할머니가 말을 이었다.

[너에겐 이 상속서류가 이제 필요없겠지.]

가느다란 손가락이 종이를 갈갈이 찢었다. 눈보라같이 그 서류가 지용의 뺨을 때렸다.

[넌 내가 미울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반항하고 싶었겠지. 돈때문에 결혼해야 하는 것과 즐거움을 주는 그 아름다운 몸을 취하는 것, 그 두가지를 다 하면서 너는 즐기고 있었던 거야. 넌 이미 다 가지고 있는데도…더 더 가지고 싶어서…어떨 땐 돈만 갖고 이미 단물을 다 빨아버린 그 아이는 네 조수에게 넘기려고도 하고…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걸 거부하니까 평판을 땅에 떨어뜨리고…]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아이가 아닙니다.]

간지용은 절박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이 세계가 그저 평판을 만든다고 만들어진다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그건 그 아이 본래의 모습인 겁니다.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변덕스럽고, 돈을 밝히고, 남자들을 많이 데리고 있고, 얼마 전에는 시길이와 동거까지 했다는 말 말이냐?]

[사실입니다! 시길이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엔 노구진이라는 연출가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 남자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고모할머니가 대답했다.

[진실한 사랑을 원한다고. 그걸 위해서는 뭐든지 하겠다고. 그 남자는 그렇게 말했지.]

그녀는 마치 생을 마치기 전, 페이지가 나달나달한 로맨스 소설을 읽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다희는 그 남자와 행복할 게다. 네 옆에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결론은 나버렸다. 간지용은 한마디도 더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죽을 정도로 행복하겠지.]

간지용의 뒷머리를 향해 그녀가 말했다.

[죽을 정도로…혹은 죽임을 당할 정도로…]

그리고 갑자기 고모할머니는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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