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다만 다희가 주연을 맡게 되면서 상대역으로 시길을 고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뺴고는. 거의 공식적인 왕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시길이 아직까지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한 건 사실이었지만 다희는 망가지는 역에도, 엑스트라에서도 그를 빼달라고 주문했다.

“오늘도 참 멋졌어.”

구진이 칭찬하면서 다희의 목에 두른 여우목도리를 그녀를 쓰다듬듯 쓰다듬었다.

“그래. 조금만 더 해봐.”

다희가 구진에게 요구했다.

“응?”

“그 정도가지고는 내 연기를 찬탄한다고 할 수 없어. 더해.”

“다희, 연출도 자기 몫이 있다고.”

“흥! 못하겠어? 다이아몬드는 줄 수 있어도 이건 못 준다고? 뭐가 그래. 연출이라는 사람이…”

다희가 흥!하고 목을 뻣뻣이 세웠다.

“참 좋았어요.”

시길이 다희가 안 보이는 구석에서 조용히 말했다.

“…어머, 방금 누군가가 내 칭찬을 한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밖으로 나가보자고.”

구진이 되도록이면 두 사람이 마주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녀를 대기실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엄청난 환호성이 울리면서 두 사람을 향한 군중의 뜨거운 박수가 연이었다.
그리고 그때 총성이 울렸다.


탕!

그때 본능적으로 시길은 일어섰다.


탕!


그것은 그가 정신을 잃었을 때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 그를 밟고 지나가는 소리이기도 했으며 전철이 그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간 철로에서 내는 소리와도 같았다.
시길은 와들와들 떨었다.

시작되었다.시작되었다. 시작되었다. 시작되었다. 시작되었다.시작되었다. 시작되었다.시작되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총성이 울린 밖을 향해서 미친 듯이 달렸다. 아니 몸을 날렸다.

마치 슬로 모션처럼 구진이 다희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경찰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시길은 자신도 모르게 범인을 향해서 달려갔다. 그 총구! 총구는 그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길만큼이나 그 범인도 흥분해 있어서 겨냥이 잘 맞지 않았다. 아까 전에 쏜 총탄도 다희와 구진을 벗어나 벽에 박혀 있었다.

“안돼!!!!”

다희의 외침과 동시에 시길은 다시 한번 바닥에 크게 쓰러지고 말았다. 총은 시길의 손에 주어진 채였다.
언제 빼앗았는지는 그들 셋 중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탕!

마차가 그의 몸을 밟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탕!

여기가 천국인가, 지옥인가…

탕!

“시길아! 길아! 정신이 들어? 죽지마. 죽지마, 죽지마…내가 잘못…했어. 내가 널 너무 좋아해서…그래서…”

“야! 야! 정신 차려. 나. 노구진이다. 너 다음에 주연으로 올려줄거야. 임마. 그러니까 정신 차려.”

그는 흐릿한 시선을 두 사람과 극단원들에게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까무러치고 말았다.

시길은 병원으로 옮겨진 후 뇌전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한동안 두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도스토옙스키모사 #백치오마쥬 #백치 #옴므파탈 #광팬살인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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