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길은 경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다희가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그는 다희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건 경인의 손을 만지면 만질 수록 확실해졌다.

“정말 그 여배우하고는 끝난 거죠?”

경인이 반짝이는 눈동자가 그를 응시했다.

“우린…”

그는 잠시 말을 흐렸다.

“한때 사랑했던 것 같긴 해요.”

“…한때?”

경인은 그를 추궁하는 듯한 어조로 되물었다.

“네. 한때. 날 거리에서 그녀가 구했을 때.”

“그 이야기를 좀 해봐요.”

경인의 말에 시길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대하국에서 스위스로 유학을 갔을 때 이야기였다. 유학이라고는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발육부진이었던 그는 뇌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다.
나이가 10대 중반이었음에도 그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몸상태도 허약 그 자체였다.
스위스의 모 박사가 그의 발육부진 상태를 개선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어 발음 상태와 심리는 최악에 가까웠다.

“날 좀 내버려둬!”

언제였던가…집안에서 후원이 끊기자 스위스의 박사는 그를 포기하고 대하국으로 돌려보냈다.
돈이라고는 얼마 가지고 있지 못했던 그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 쓰러졌다.
우연이라면 우연일까…
노구진은 그날 다희를 거의 보쌈하다시피 해서 자신의 고향으로 데려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만 치근거려! 그깟 다이아 하나에 내 맘이 바뀌는 줄 알아?”

“다이아는 영원한 거야. 그런 것도 모르나? 그래서야 영원히…”

다투던 두 사람은 잠시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민시길을 발견했다.

“잠깐만.”

다희는 노구진을 쿡 찔렀다.

“차 좀 세워. 저 사람 좀 데리고 가.”

“…시체따위 태우는 취미는 없어. 도망가려고 그러는 거지?”

노구진은 그 당시에도 연출가를 맡고 있었지만 그다지 자신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연출가야 어쨌든 좋았다.
눈앞의 다희만 데려갈 수 있으면 좋았다.

“저 사람 태우면 같이 갈게. 병원에도 데려다줘.”

“…정말이지?”

노구진은 그제서야 민시길을  차에 태웠다. 민시길을 몸이 시체마냥 흔들리자 노구진은 고개를 저었다.

“죽은 거 아냐?”

“아냐,아직 안 죽었어. 그리고 이거 봐.”

나다희는 민시길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아름답잖아. 아름다운 얼굴이야.”

그때 여경인이 참견했다.

“당신은 쓰러져 있었다면서 그걸 어떻게 기억을 해요?”

“…음, 들었어요, 그땐 정신을 잃었는데도 다 들리더군요.”

민시길은 그렇게 대답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민시길을 데리고 갔다. 
나다희는 노구진에게 자신을 배우로 만들어주면 그의 뜻대로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구진은 고개를 저었다.

“안해.”

“왜? 당신에게도 그다지 나쁜…”

다희의 말에 구진이 대답했다.

“초보자를 배우로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나는 그런 거추장스런 짓은 안 해. 그리고 난 연출가는 계속 할 생각 없어. 재산이나 물려받아서 편하게 살 거야.”

“향상심도 없는 인간 같으니. 쓸모 없는 인간!”

“쟤 데려오면 뜻대로 해준다면서…”

약간 뒤로 물러선 듯한 노구진에게 나다희는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당신은 아무 것도 아냐.”

“…뭐?”

“당신이 못한다면 난 할 수 있어!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겠어!”

“이…이봐?”

그렇게 그녀는 민시길을 데리고 나갔다. 마침 그녀에게는 구진에게 받은 돈이 있었고, 그녀는 민시길과 살 집을 마련했다.
민시길은 그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말간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계속 말을 걸었다. 마치 인형같은 그에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신발과 양말을 신기고…
그런 와중에 민시길은 점점 자신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때로 자신의 침대에 그도 같이 눕히고 잠을 잤다.
그리고…

“알았어! 네가 원하는대로 해줄게!”

구진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녀와 민시길을 데리고 갔다. 가출한 지 넉달만이었다.
그 사이에 시길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수준이었지만, 많은 발전이었다.
그의 발달 사항에 구진은 놀랐지만 아직은 수준이 아니라면서 그는 무시했다.
우선 그는 시길은 제쳐놓고 다희를 무대 위에 올릴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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