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이 떠난 후 백조들은 점점 별궁에 가까이 다가왔다. 여러마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었으나, 뭐랄까.
백조스럽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순결함이라던가, 아름다움...눈으로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적어졌다고나 할까.
깃털은 눈같이 새하얗지만 군데군데 수초에 휘감긴 듯한 그 답답한 느낌...
몸 여기저기가 그 백조들의 시선으로 묶인 듯한 , 끝도 없이 풀어내야 할 것 같은 그 께름칙함...

"식량창고에 열쇠는 가지고 있겠지?"

신부가 시종에게 물었다. 시종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중간 사관과 함께 좀 다녀오겠나? 왕자님이 피로해하시는 것 같으니 원기를 차려드릴 수 있는 걸 하나 해봐야겠네."

검은새와 신부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아마 검은새가 왕자님의 식성을 알고 있으니 자신이 차리겠노라 한 모양이었다.-있고, 우린 지하실의 식량창고로 내려갔다.

"왕자님이 탈진하셨군요."

내 말에 시종은 코웃음을 쳤다.

"겨우 이 정도 일에 쓰러질 사람이 아닙니다."

"...말투에 가시가 박혔군요."

내 말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럼, 내가 뭐라고 해야 합니까? 이번 사건만 없었으면 난 이런 시골에 갇혀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요."

왕자의 젖동생이라고 들었지만 말투는 시정잡배에 가까울 정도로 난폭했다.

"저 사람이 아직도 왕자입니까?"

"......"

시종은 왕자를 질투했다. 사서에 쓴다면 그렇게 써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은 아직도 왕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만."

그는 어두컴컴한 식량창고에 전등으로 빛을 비추며 다시 차갑게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왕자가 아닙니다."

"......"

물론 여왕이 왕자를 유폐했기 때문에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먼저 남겠다고 한 건 그가 아니었나?

"당신은..."

"이건 다 여왕의 명령때문이죠. 당신도 마찬가지일텐데요."

"...그럼 당신도?"

내 말에 그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왕.가.를. 배.반.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맞는 말이었다. 그때 그 암막커튼을 거두면서 여왕이 했던 말들.

"그대는 보아서는 안 될 것 을 보았다. 중간."

"......"

"그대는 그대의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관이다. 그러나..."

"......"

"만약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려나?"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내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역사다. 그러나 그 역사 이전에 내 가족이 다 죽어버린다면...내가 써야 할 역사는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더더군다나, 그대의 이 행위가 가족을 떠나 이 나라 전체를 위험하게 했다면."

여왕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려왔다.

"그대는 그 일을 책임지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역사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겨우 꺼낸 내 항변에 여왕은 날카롭게 흠! 하고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대는 내 말을 꼭 듣게 될 것이다. 어려울 것 없는 것이야.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행적을 기록하게. 그의 미덕의 토씨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그의 악덕의 골재 하나하나를 발라내 역사책에 기록해."

식량창고에서 시종은 잠시 와인 창고를 둘러보라고 했다.

"이런 것들을 보기도 힘들 것이니까. 당연히 그가 죽으면 이 성은 그대로 죽은 성이 됩니다...그렇게 되면 귀한 건 구경도 못하게 되지요. 얼마 전에 봤지만 꽤 괜찮은 와인이 있었지요...그대도 나와 같은 일을 한다면 하나 정도 건지기도 될..."

쨍그랑!

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종의 어깨를 잡았다.

"이 방에 열쇠를 가진 사람이 또 있습니까?"

"...아니오?"

시종은 무감각하게 와인 하나의 라벨을 들어보였다.

"이거 보세요. 최고급 무통! 이 라벨 하나만으로도..."

폭!

시종이 든 전등의 불이 꺼졌다.

팍!

시종은 다시 불을 켰다.

포폭!

다시 불이 꺼졌다.

"...돌아갑시다. 왠지 기분이 나쁘군요."

"...뭘 돌아갑니까? 그냥 성이 오래 되어서 그런 것일 뿐인데요."

시종은 그렇게 말한 후 허리 춤에 찬 전등 몇개의 한꺼번에 켜고는 나를 반대쪽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와인 창고 반대편으로 달려나갔다.

"와인은 흥미 없으면 저쪽을 한번 보시죠. 왕자에게 아직도 연민의 정이 남았걸랑 저 이베리코 하몽이라도 잘라서 먹여야죠!"

포포포폭!!

희미하게 밝혀 놓았던 전등들의 불이 다 나갔다.

"선생!"

잠시 넋이 나간 나는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어서 그냥 불러댔다.
하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샤샤샤샤샤삿!

뱀의 비늘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와 함께 짤막한 비명소리가 들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쨍그랑 소리가 이어지더니 무거운것이 억지로 높은 곳에 놓여있다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로 끝이 났다.

"시종 선생!"

내 울부짖는 소리는 창고 가득히 퍼져 나갔다. 나는 마치 침묵의 사구에 던져진 사람처럼 귀를 붙잡고 괴로워하다가 쓰러져버렸다. 그 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뱀허물을 본 것과 그 옆에 마치 검은새를 무척 닮은 여자 하나가 시종의 목에 입을 가져다 댄 것. 그리고 입을 잠시 목에서 떼고 "드디어 하나."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본 것이 악몽처럼 내 머리를 스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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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로맨스 소설이 아니게 되었군요...대략 난감...
호러로 전환을 추구해야..;;;;;;;;;;;;

오마쥬 대상은 몽테 크리스토 백작 되겠습니다...드디어 하나...;;;;;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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