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은 문이 열리자마자 무뚝뚝하게 말했다.

"날 안.으.로. 들.여.보.내.주.겠.소?"(Let me in?)

왕자님은 상냥하진 않지만 최대한 정중하게 백작에게 대답했다.
"물론이오."

백작은 들어오자마자 한기에 부르르 떨더니(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물에 흠뻑 젖어있었다.)이내 속사포처럼 말하기시작했다.

"내 딸을 데리고 도대체 어떻게 한거요?"

나는 그가 바닥에 누워있는 자신의 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빌어먹을 왕자! 당신은 내 딸을 도대체 뭘로 생각하는지! 인신매매라도 할 생각이오?"

"...더 이상 왕자는 아니지만 대답한다면 나는 그녀를 무척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오늘 밤을 여기서 자게 한 건 정말..."

그가 말을 더 잇기도 전에 퍽!하고 백작이 왕자님을 세게 때리는 소리가 났다. 물론 왕자님이 무예를 익히셨기에 손으로 그의 주먹을 막았지만..

"내 딸이 지금 사라..."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그 요란한 소리에 깬 그의 딸이 백작을 불렀다. 하지만 백작은 냉랭하게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네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녀라면...난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오..."

"...약혼은 한 적도 없으니 이제 와서 파혼도 안되겠지만."

이빨이란 이빨은 다 북북 갈면서 백작이 대꾸했다.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를 닮아 진짜 무책임한 연인이고. 그 아이에겐 불행만 가져다줬소!"

백작은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왕자님은 그에게 서재 한켠에 있던 의자를 권했고...곧 백작은 불만 가득한 색소옅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난로가에 앉았다.
왕자님과 그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고, 백작은 왕자님이 그 아가씨를 빼돌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자 이내 난로가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시간은 늦었고, 왕자님도 그동안 식사도 못하고, 잠도 거의 못 주무셨기에 이내 왕자님도 난로가에서 졸기 시작하셨다.

"친아버지 맞으십니까?"

내 말에 검은새는 핏기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불행하게도 맞는 것 같네요."

그녀는 다시 침낭의 지퍼를 올리고 잠을 청했다.

꾸벅꾸벅 조는 백작의 모양이, 그가 늙은 사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그가 여왕님에게 사정없이 소리를 질러도 그녀에게 곧 굴복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만큼은 그가 젊은 피를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왕자님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니 그는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딸이 걱정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백두 백작의 그림자가...

"뭘 보고 있나."

뚱뚱한 신부가 침낭에서 끙끙거리면서 일어나려고 애썼다

"중간! 자네. 저하를 지켜드려야지! 어서!!"

난로의 불빛에 의해서 바닥에 생긴 백두 백작의 호리호리한 그림자가 갑자기 쭈욱하고 늘어나더니 마치 왕자님을 잡아먹을 것 같이 너울거렸다.

"어서!!!!"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백두백작을 난로가로 확 밀어버렸다. 그 순간 백두백작이 걸친 망토에서 불에 탄 가죽의 케케묵은 냄새가 화악하고 퍼졌다.
그리고 곧 뺨이 얼얼해졌다.

잠이 덜 깬 백작이 자신의 망토에 붙은 불을 끄느라 신경쓰는 동안 검은새가 내 뺨을 세게 갈긴 것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백작에게 다가가 백작의 망토에 물을 부어서 그 불을 이내 잡았다.

"아버지. 걱정마세요."

그녀가 백작에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으나 아버지를 닮아 옅은 눈동자에는 기품이 흘러 넘쳤다.

"그 아이는 꼭 돌아올거에요. 아니, 돌아오지 않더라도 왕자님은 제가..."

"......"

백두백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잠시 자신의 딸의 어깨를 꽉 붙잡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백작은 떠났다.

"곧 돌아오마. 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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