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 졸았던 모양이다.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왕자님이 난로에 불을 피우고 계셨다.
아직 겨울이 오려면 멀었지만, 별궁의 난방기기가 다 꺼져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알게 모르게 마음이 찔려 왕자님께 가까이 다가갔다.

"좀 더 자지 그러나?"

왕자님은 쪼개지 못할 정도로 단단한 나무같은 어조로 말씀하셨다. 은근히 저항감이 느껴졌다. 난 이때껏 관료의 자부심만큼 생각해왔기에 이런 대응에는 익숙지 않았다.

"저하께서 주무시지 않는데, 제가 어떻게 자겠습니까?"

"다 자고 있네만?"

정신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왕자님 주변에 침낭이 여러 개 있었다. 저하의 시종부터, 검은새라고 불리던 백작의 딸...
신부도 침낭에 얼굴을 끼인 채 자고 있었다. 얼굴이 워낙 통통해 침낭에 다 들어가진 못한 모양이었다.

"...사관은..."

"...사관은 자지 않는다는 말은 그만두게."

왕자님은 의자에 걸터앉아 조용히 불을 응시하셨다.

"그리고 난 더 이상 왕자도 아니니까 그렇게 부르지도 말고."

"...저하..."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왕자님의 얼굴에 불기가 화악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왕자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걸어나가셨다. 문을 열면...마치...

"좀 더 자게. 앞으로도 힘들테니...난 좀 나가봐야겠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화악하고 몰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난로가의 불이 있으니 더 이상 어둠이 침범할 수는 없다는 안심이 일순간 들었다. 그러나 이 마음이 진정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왕자님이 어둠을 응시하는 것이 보였다. 왕자님이 그 순간 중얼거리셨다.

"어인 일이시오? 백두 백작..."

그 깊은 어둠 속에 백두 백작이 흑단처럼 새카만 긴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채로 서 있었던 것이다.
그가 찾아온 것은 왕자님께 그 사건이 발생하기 1달 전이었다.그리고 그가 찾아온 후로 별궁 잔디밭에 호수에 살던 백조들이 엄청나게 날아와 마치 별궁을 감시하듯 모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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