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관이다. 성실하고 현실적인 역사관을 가진 사관이다. 그렇다.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나는 지금 굉장히 화가 나있다.
여왕이라는 사람이 사관을 방에 들이지 않는다. 여자라서 안된다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하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고참 사관이 왕은 왕일 뿐이라도 이야기했는데도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사관들을 집어넣었더니, 사생활 침해라면서 다 쫓아내버렸다.

"허, 참."

"답답도 하지. 왜 사관들은 들이지 않는 건가? 기자들은 들이면서?"

"밀실 정치 아뇨. 그 정도는 상식이지."

"기자들은 먹을 걸 주면 돌아가니까. 더더군다나 그 상대가 우리들 아닙니까?"

얼마 전 여왕은 기자들을 불러서 호화롭게 식사를 하게 하고, 선물도 각각 나누어주었다. 향낭이긴 했지만 왕조 국가에 이만한 영광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는 쏙 빼놓고 주어서 그렇지.
그리고 사관들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라면서 우리들 부서에 기자들을 보내버렸다.
덕분에 일은 몽땅 다 스톱이고!

"숨어서 해야겠군,"

"몰래 카메라라고 설치 할까요?"

"걸리면 죽어."

아닌게 아니라 왕조 국가니 걸리면 불경죄에 걸릴 터.
하지만 나는 한다. 못 참겠다고. 이거. 너무 답답해서.

"제가 몰래 숨어들겠습니다. 어차피 사서는 지금 여왕께서 돌아가신 후에 왕자님이 보게 되시는 것이니까."

"...조심하게."

그래서 여자사관들의 응원을 받으며 몰래 숨어든 것까지는 좋았는데...암막 커튼 사이에 있으려니 답답해죽을 지경!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주빛 커튼을 걷고 얼굴을 보고 싶었고, 제대로 듣고 싶었지만 워낙 소리가 작아서...

"...그래서 내게 뭘 요구하는 겁니까."

귀에 익은 목소리다. 어디의 백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대의 딸이 필요하다고..."

여왕의 목소리였다.

"날 내팽겨쳤던 건 기억이 안 나시나 보군."

"...그건..."

그 고고하신 여왕님이 처음으로 주저하셨다.

"약혼하겠다 하시고는 다른 남자에게 가시지 않았소?왕 자리가 탐이 나서! 외사촌과 억지로 결혼한 당신이! 내게 할말이 더 있는지 나는 모르겠군요!"

"......"

"내 딸애에게 또 같은 고통을 겪게 할 순 없소이다."

"......"

"당신들은 도대체 우리 어둠족을 뭘로 생각하시는지? 전전전대에서 우린 사골 우려먹 듯 이용당했소. 댁의 외증조부인 의환왕을 생각해보시오. 그치가 우리들을 이용해서 독립투사들을 다 죽였던 것 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시진 않겠지!"

"그대도 공범이야."

여왕의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잠시 경악했다. 귀족 칭호를 내렸던 죽은 독립투사들이...사실은 왕실에 의해서 살해당했단 말인가?
여왕의 외증조부인 의환왕은 한때 임시정부의 중책을 맡기도 했었다. 다들 왕위를 노리지 않고 독립에 몸을 바친 왕족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결국 왕위는 의환왕의 아들이자 여왕의 외조부가 이었었다.

"흥! 내 딸애는 결코 내줄 수 없소. 또 무슨 죄를 뒤집어씌우려는지 알 수 가 있나!"

"...정 안되면 그대의 연인을 대신 넣으면 되지 않나. 그 어린 여자애 말이야...당신도 양심이 있다면 차마 그런 짓을 하지 못했을텐데?"

여왕은 다소 야비할 수도 있는 방법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에게 다 알려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려나? 그대가 그대의 친구의 딸을 연인으로 삼았다는 것 말이야..."

"...그 애를 왜 끌어들이는 거요! 그리고 그 앤 내 연인도 뭐도 아니오.그 앤 내 딸이란 말이오!"

"그렇다면 어렵지 않겠는걸?"

"...하여간 안되오. 당신이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난 내 딸애들을 저 멀리로 보내버릴거요."

"...안되긴."

커튼을 살짝 걷고 보니 여왕이 그 백작의 이마에 입술을 대는 것이 보였다. 단순한, 그러니까 가벼운 입맞춤에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진한 무언가가 있었다.
백작은 잠시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돌렸다.

"...이런다고 내 맘이 달라질 줄 알면 오산이오."

"...아니 맘이 바뀔 걸. 그대 마음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나는 잘 알아."

평소 여왕을 만날 때마다 항상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이제 잘 알 것 같았다.
항상 남들보다 스스로 한단계 더 높다는 마음이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내겐 아직도 그대의 심장 고동소리가 들려와. 너무 선명하게 잘 들려와. 내게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면 그 심장부터 떼어내야 할 걸?"

"...처음부터 심장 없이 태어날 걸 그랬군."

씁쓸한 어조로 백작은 그렇게 말하더니 내쪽으로 갑자기 다가왔다. 커튼을 젖히려는가 싶더니만 그는 이내 뒤를 보이고는 걸어나갔다.

"그대가 내 말에 따르는 걸로 알겠네. 백두 백작."

여왕은 옥좌에 앉아 그렇게 이르고는 붉은 천으로 감싸인 미닫문이 닫히 는 걸 보자마자 내쪽으로 다가와 암막 커튼을 확 젖혔다.

"여기에 있었군. 그래...무슨 대가를 치르고 이 일을 마무리하려고? 사관 우중간?"

 
-----------------------------------------------------------------------------------------------------------------------------------
왕과 사관이 나온다는 그 영화하고도 상관없고, 패설산해경이랑도 상관이 없는데...
그 영화 개봉한다니까 패설산해경이 태그에 올라오고...
그 전회에 사관이 나오니까 태그에 또 패설산해경이 올라오고...아이고 머리야...
호프만 선생 태그나 올려주셔요...
영향은 호프만 선생 영향을 더 받았으니..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