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며칠을 계속 서재로 가서 먹은 것도 없이 왕실전범의 두툼한 쪽들을 넘겼다. 배고파서 위장이 다 뒤집어지는 느낌이었지만...원인을 알기 전에는 쓰러질 수도 없었고, 죽을 수도 없었다.
왕실전범의 그 페이지를 찾았을 때 나는 차라리 환호하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래되다 못해 바스락거리는 그 페이지에는...

"저하."

페이지를 읽으려는 순간, 서재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전기마저 끊어진 통에 어두운 그 방에서 순간적으로 쏟아진 빛때문에 나는 눈이 멀 정도로 아픔을 느꼈다.

"...누구, 누구냐."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싸쥐었지만 이내 문이 반쯤 닫겼고, 그래서 약간 부연 빛이 부드럽게 내 눈을 둘렀다.

"저하. 접니다..."

나의 젖동생, 나의 친구, 나의 아우...시종이 옆에 누군가를 데리고 들어온 것이었다.

"넌 어머니와 가지 않았느냐?"

"...전 저하를 지켜야 하는 시종입니다. 어딜 가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 저하 곁에 있을 겁니다."

거짓말...
하지만 거짓말이라고 해도 좋다.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

그러자 그의 뒤에 있는 사람이 조용히 대답했다.

"저하...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 동네에 사는 신부, 길창덕이라고 합니다...왕실 전범에 따라 어둠족의 접근을 막기 위해 저하께 배정되었습니다..."

"......"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 이전에, 나는 왕실전범의 놓친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왕실 친족들에게 내 이르노니...
  과거 고대시절부터 왕비족이라 일컫는 자들은 어둠의 힘을 빌려...
  대대로 왕실과 혼인하였나니...
  그리하여 과거로부터 패망한 이 땅의 나라들은...
  왕비족의 반발로 부터 그리 된 바...
  지상의 괴이한 변동은 왕비족이던 그들의 암약으로 인한 것이었기에...
  앞으로 어둠족들과 혼인할지라도...
  혹여 그들에게 마음 주지 말고, 계약도 하지 말지어다.
  또한 어둠족들을 정실로 삼더라도 그들 사이에 자식을 생산하지 말지니...
  후에 나라가 패망하여 이 왕실의 역사가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과 결코 계약하지 말지어다....
  그들과 무슨 안약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는 왕실에서 끊어지고... 그의 영혼은 어둠족에게 남을 것이라...   

   대한제국의 피를 이은 나 의환왕 이지석이 쓰노라...-

툭...
나는 왕실전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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