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있어서 스테이크는 잘 살던 시대의 잔재물같은 거다.
아버지가 낭비벽이 심하신 때 가끔 연말쯤에 파크 호텔같은 곳으로 데려가셔서 스테이크나 호텔 짜장면, 탕수육을 세주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정통 양식을 시켜주려다가, 가격에 놀란 어머니가 짤짤 흔드는 통에 한 급수 낮추곤 하긴 했지만...
근데 막상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는 아버지 앞에서 스테이크가 질겨서 못 먹겠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어린애가 뭘 알겠는가? 고기는 좋아하니까 먹긴 먹는데, 기존 먹는 거하고 뭐가 다른지는 전혀 모르겠고.
아빠는 흐뭇한 얼굴로 많이 먹어, 많이 먹어.를 연발하시니...
그러다가 아이엠에프 직격탄을 맞고, 몇번 의도치 않게 잘리기도 하면서...아버지가 독해졌다.
갈아야 될 것이 있어서 사러 가면 절약 정신이 없다고 외치시니...
하여간 옛 추억을 잊지 못한(커피, 피자, 스테이크, 햄버거)내가 가끔 시내의 스테이크 집을 원정갔다 오면...(물론 어릴 때 추억으로만 간 것이지...스테이크의 진정한 맛을 알고 간 건 아니다...)홱 돌아보시면서 돈이 썩었다!를 외치시므로
이럴 때는 같이 가는 게 낫다고...스테이끼 썰러 같이 가시지 않겠어요? 하고 여쭤보면 답은 흥!이다.
그러던 아버지가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하는 스테이크를 보고 나도 한번 해봐야지! 라고 하시더니 지금
2달 째 아침에 종류별로 스테이크가 올라오고 있다.
물론 매일 먹는 건 아니지만...
돼지 후지 스테이크, 돼지 전지 스테이크, 돼지 안심 스테이크, 소 안심 스테이크...
양념은 집에서 한 머루 소주술을 붓고 버터를 둘러 촉촉하고 담백하고, 적당히 짭짤하다.
소믈리에로서도 능력 있으셔서 초정 탄산수를 가져다가 머루 액기스에 적당량 부어 탄산음료 만드는데도 심혈을 기울이신다.
남자들이 요리하는 시대가 와서 그런가, 스테이크를 요리하게 되신 이유가 모 프로그램에서 스테이크 만드는 걸 보여줘서 그렇다나...
평소에 요리하는 실력이 나보다 나으셔서, 젊으실 적에 차라리 요리를 하시지 그러셨어요...했더니 하시는 말씀.
"남자가 어떻게 물에 손을 담그겠니..."
이것이 아버지가 사시던 시대와 요즘 남자들이 사는 시대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하긴 요즘도 남성 요리교실에 신청하는 사람은 얼마 없긴 하더라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프 스테이크 타령을 무라카미 라디오 하이요~로 보면서 생각난 이야기다...
하긴 나도 나중에 하루키같은 대작가가 되거나 그만한 나이가 되면 아버지의 포크 스테이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내 기억에서 아버지의 스테이크는 추억이 되기에는 계속 현재형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