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잠을 자려고 했지만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검은새와 만나고 싶었고 또 그만큼이나 고니를 괴롭히고 싶었다.
그 앙큼한 얼굴로 날 속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어머니 품에서 고양이만큼이나 편하게 자고 있을 시종 몰래 페라리를 끌고 백작의 성으로 달려갔다.백작이 있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성의 고용인들은 내 얼굴을 알고 있으니 문을 열어주리라.

하지만 창 밖으로 밤의 정경을 보자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은은하게 붕붕 울리는 벌레 소리와 성에서 사용하는 풍등이 조명효과를 내어 호수는 잔잔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착시인가 싶을 정도로 우아하게 춤을 추는 새들을 볼 수 있었다. 
다리를 올렸다가 호수를 차고 날아오르는가 싶은 순간 비단천을 휘날리며 가느다란 다리로 호수위를 맴도는 아가씨들.

나는 잠시 차를 멈췄다. 그리고 호수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었다.

"아직도 멀었나? 날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냐!"

"...제게 왜 그렇게 화를 내시죠..."

고니의 목소리였다. 남자의 목소리는 약간 약간 내가 아는 사람을 닮은 듯 했지만 식별할 순 없었다. 백작이라기엔 너무 체구가 당당했다. 그 연령대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넌 내게 말했다. 언젠가 자유의 몸이 되면 바로 내게 오겠다고."

"전 자유의 몸이 아니에요. 당신에게 매여 있잖아요."

"난 너에게 그렇게 해주었다. 하지만 넌 내게 맘이 떠났구나. 아니면 왕자라는 좀팽이가 맘에. 드느냐? 그는 아무개도 아니야. 왕이 되기 전에는!"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몇번이나 당신께 부탁드렸나요...전 전..."

"넌 언제나 거짓말만 한다. 요망한 것. 평생 시장에서 구경거리가 되거라."

남자는 그녀를 밀쳐냈다.

"전 당신에게 약속할 수 있어요. 왕자를 왕자를 당신에게 바칠 게요....절 그렇게 버리지 말아주세요...."

나는 금방이라도 뛰쳐나가 그 놈의 멱살을 잡고, 한손으로는 고니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었다.
하지만 기다려야 했다. 그 놈이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밤마실 나온 왕자의 모습을 민간인에게 들켜버리고 만다. 그럼 타블로이드에 실리는 것도 일이 아니리라.
  그리고 그가. 떠난 순간, 나는 그녀앞으로 뛰어들었다.

"저 놈이 그 프랑스 놈이오?"

"누...누구세요?"

백조는 평소의 달콤한 방정맞음은 잠시 잊은 채 비운의 여주인공인양 날 쳐다보았다.

"날 바보로 아는 군. 그런 식으로 연기를 해봤자지!"
 
"왕자님?"

"도대체 그 품에 안은 남자의 숫자는 과연 몇명인가? 응? 앙큼하게 거짓말을! 날 바친다고? 누구에게? 감히! "

그녀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어떻게 보면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훗날 날 가지게 된 이후에 느낀 그 감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그녀는 팔을 벌려 날 감싸안으려고 했다. 평소에 그 발랄함이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잘 익은 복숭아 같은 목덜미와 향기를 가진 그녀를 내가 왜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났기에 그녀의  비단 베이비돌 드레스를 죄악 하고 찢어버렸다.
그 옷도 처음 나를 만났던 순간에 입었던 옷처럼 군데군데 깃털이 달려 있었다.
그녀는 당황하고 분노한 듯 했지만 어쨌든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속을 내가 아니었다.

"그만하세요. 이제 왕자님이 하실만한 행동인가요?놓아주세요!"

"프랑스인은 어디 있지? 내놔!! 건방진 행동을 당장 고쳐주지!"

그녀의 뺨을 있는 힘껏 갈겼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서 진주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그만하세요...절...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순간적으로 불쌍한 맘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이 옳지 못하다는 생각도 갑자기 들었다.
모두가 다 꾸민 이야기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녀의 눈물을 보는 순간에 퍼뜩 들었다

"차라리 잘되었어요...당신께서 절 그렇게 사랑하시니...질투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죠. 그걸 믿고 당신께 제 모습을 보여드리겠어요..."

그녀는 갑자기 찢어진 옷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잠시 사라졌다. 그리고 아까 전에 보았던 아가씨들이 다시 나타나 호수를 빙 둘러쌌다. 그 위에 마치 조각상처럼 별궁에서 사라졌던 아름다운 백조 한 마리가 우아하게 호수를 가로질러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 오래 전 이 호수의 주인이자 어둠족의 왕의 딸 고니입니다. 당신을 찾고 있었어요. 나의 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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