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갑자기 이 별궁에 있기가 싫어졌다. 어머니에게 본궁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어떻게 그러니?"

"......"

"이건 다 왕자비 간택을 위한 거야. 일부러 좋은 분위기를 위해서 별궁으로까지 왔잖아? 마침 네 마음에 두는 후보자들도 이곳에 있고..."

사실 어머니가 더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젊고 더 잘생긴 청년들과 겉으로나마 애정을 나누는 사이이니 말이다.

"오, 혹시 저번에 내가 한 말때문에 그러니?"

"......"

어머니가 춤을 출 때는 반백이 섞인 긴 머리가 티아라 사이로 티아라보다 더 빛나는 것 같았다.
조악하나마 번쩍거리는 샹들리에 밑에서 어머니는 마치 여신처럼 백두 백작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듯 했다.
백두백작은 어머니와 자주 춤을 추기도 했지만, 이야기도 어머니와 더 자주 나눴으며 최근에 어머니 주변에 있는 애동들도 백두 백작이 붙여준 듯 했다.
그런 어머니이니, 이제 백두 백작에게서 떠나가면서 그만한 상대들을 조달하기 힘들어 질 것이다.

"농담으로 한 말인데, 정말 영애들에게 그 말을 한 건 아니겠지?"

"안 했습니다.오늘 할 예정이긴 하지만요."

어머니가 피식하고 웃으셨다.

"백두 백작하고도 이걸로 이별이구나. 그동안 재미있었는데..."

"어머니."

나는 그제서야 어머니가 백두 백작에게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약간 눈치챌 수 있었다.
미묘한 쓴 악의.
초콜릿의 적당한 농도는 엘레강트한 쓴 맛을 준다. 하지만 백퍼센트의 씁쓸한 맛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백두 백작이 식민지 시절 혁명가의 자식인 건 알고 있니?"

어머니가 머리에 붙은 장신구들을 떼어내면서 말씀하셨다.

"그 혁명가가 하필 그 유명한 암흑족이라는 게 문제였지. 귀족이면서 혁명가라니...그것도 독립 혁명가라니."

"덕분에 독립국가로 되었고, 어머니는 왕위를 이으셨잖아요."

"빚진 덕분에 이번에 왕자비 자리를 내놓았잖니?"

어머니가 춤을 추듯 빙글 몸을 돌렸다.

"그건 독 묻은 초콜릿과 같은 거야."

"......"

"그 자는 왕이라는 자리를 없애려고 하지. 내가 여왕인가 맘에 들지 않은 게야. 젊은 시절에는 내게 피의 왕좌에서 내려오라고 하더구나...내가 왜?"

"그럼 왕자비 자리를 노리는 건?"

"널 다음 왕에서 끌어내릴 계책을 짜는 거지...출신성분이 모호한 여자애를 어린 시절 잃은 딸이라고 포장하고, 좀 나은 애는 양녀라고 불러서 둘 중 아무나 내게 며느리로 맡긴 후 정통성을 들어서 왕가에 상처를 주려는 거야."

"어머니...그래도 왕궁에 초대도 하시고..."

"설마하니 그런 수를 쓸 줄은 알았겠니? 새장에 몰래 기어들어가 있는 백작 영애라니...그건 다 백작의 음모였어."

어머니는 이내 목에 건 목걸이를 풀었다. 오팔과 루비가 섞인 은제 목걸이는 은은한 품위를 자랑하며 목에서 스르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나도 반격의 기회를 잡은 거지...프랑스병이나 옮기는 군인의 연인이었다니..."

"...정말...이 아닐지도 모르지...않..."

"진짜인지 아닌지 네가 알긴 아니?"

어머니가 생긋 웃으셨다.

"네가 본궁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그 영애에게 진실을 묻지 않아도, 다 해결되는 방법이 있으니...그냥 이곳에 있으렴. 진실은...곧 밝혀질거야. 건방진 백작의 얼굴이 흐려지는 걸 보는 것도 즐거움이지...
그리고 너도, 프랑스 남자처럼 대담하게 그 여자를 대하렴. 이미 남자가 있는데 네가 좀 거칠게 다룬다고 무슨 상관이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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