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호수에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안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난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이때까지 변변한 애인 없었던 왕자가 왕자비 후보가 될만한 여성을 만나고 있다가 돌아왔는데 어째서 저 표정은 안도한 표정인가?
약간 숙인 하얀 목덜미에 걸린 굵은 알의 진주목걸이가 노회한 정치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듯 희미하고도 약간 둔탁한 빛을 보였다. 어머니의 눈부신 목덜미가 지성의 냉정과 유혹을 보여주는 것과는 반대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어머니의 그 목덜미에 반해 충성을 다하는 자도 있다고도 하니까.
"그래. 호수는 위험한 것이지. 우리에게는."
왕비족은 아무나 뽑히는 것이라서 그렇게 어려워하는 것이라고 묻고 싶었다.
"어머니...이때껏."
이때까지 아름다운 반려를 만나야 한다며 베풀었던 실속없는 연회들을 떠올리면 정말 치가 떨릴 지경이다.
"그래...네 말이 뭔지는 안다. 하지만...이 어미는..."
어머니의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가 몸의 굴곡을 드러냈다. 아직까지 관리로 저 정도까지 지켜온 것이다.
35살의 남자를 아들로 둔 어머니가 말이다.
"어머니. 어머니는 여왕이세요."
"그래. 너는 왕자지. 내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
어머니가 그들을 들일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난 그 영애들의 행실이 염려가 된단다."
"조이는 그렇다치고, 고니가 어때서요?"
"글쎄...시종의 말을 들어보니...그 여자가 호수에 있다고 가라고 이야기했다던데..."
"있을 수 있는 일 아닙니까?"
"백작이 초대한 것이 아니고, 그 딸이 초대한 거라는 걸 명심하렴."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내 시종은, 내 시종이기 이전에 어머니의 애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불타는 여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있었던 일을 몽땅 다 이야기했을 터...
하긴 고니에 대해서라면 좀 이해가 갔다. 그녀는 확실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연애의 고수인지도 모르니까.
새장에 들어있던 첫만남과 지금의 초대도 백작이 꾸민 대본에 있는 거라면 나는 어쩌면 치명적인 덫에 걸린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에 그 여자를 만나면 물어보거라."
어머니가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살짝 웃으셨다.
"과연 내가 당신의 첫번째 연인인가? 하고...아마 솔직하게 인정할거야."
"첫번째 연인이라는 의미로 말입니까?"
"네가 더 잘 아는구나."
"....."
"이때것 그런 수법으로 남자들을 낚아온거란다. 암흑족들은...그래서..."
안되는 거지...하는 뒷맛 개운치 않는 말씀을 남기시면서 어머니는 그 기다란 흑색 엠파이어 드레스를 끌고 침전으로 향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