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로 백작은 딸들을 대동하고 궁을 자주 들르곤 했다. 어머니를  주로 만나긴 했지만, 뭐 더 들어볼 필요도 없이 용건은 그 딸들과 나의 결혼이었다.
흑조와 백조는 시종들이 있는 자리에서 주로 나와 함께 했다.
한 3개월 흐르는 동안 나의 흑조에 대한 감정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검은새가 아니었다.

"전하는 저하고 언니하고 둘 중에서 누가 좋으세요?"

어느 날 장난삼아 백조가 내게 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겁니까?"

"두 사람을 비로 삼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날, 그러니까 흑조가 백조의 눈물을 닦아준 그 이후, 백조는 사람이 변한 것 같았다.
근거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주로 흑조의 그늘진 미모에 반대되는 자신의 환한 미모에 대한-자신의 장점을 계속 어머니와 나에게 어필했다. 양녀치고는 지나친 태도다 싶었지만, 내게 아버지에게서 구해달라고 한 것으로 보아...
내게 시집오는 것으로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어한 것이 아닌가 싶다.

"황희 정승 이야기 아십니까? 영애?"

"...저런. 전 황소가 아니니 아니겠지요..."

백조가 뿌루퉁하게 대꾸했다.

"아니,그 뜻이 아니라..."

흑조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영애들...그대들 중 에 누구를 원하는지 이야기하면 그 상대가 화를 낼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전 화나지 않습니다. 전하."

기계처럼 무감각하게 흑조가 대꾸했다.

"저도요."

백조가 새침하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이야기해줘요. 나하고 언니하고 둘 중에서 누가 좋으세요? 다른 시종들한테서 듣기로 한때 언니를 많이 따라다니셨다고 들었어요!"

찰싹.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순간적으로 나와 내 동생같은 시종이 굳어버린 순간 일어난 장면은 더욱 어이없었다.

냉랭한 돌의 눈동자를 한 흑조가 인정사정없이 반지까지 낀 손으로 백조의 뺨을  갈긴 것이었다.

"건방진 것."

흑조는 잠시 내가 있다는 것을 잊은 것 같았다.

"언제부터 네가 나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감히 날 조롱해?"

"언...니..."

내가 아는 검은새라면 저렇게 말할 리 만무했다. 내가 아는 검은새라면 이렇게 말했으리라. 

"그래, 내가 전하가 좋아하는 여자였지. 물론 전하말고도 남자들을 여럿 울렸단다."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아니, 실제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생각한 것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호호, 이렇게 말이지..."

무미건조했던 그 태도는 어디로 가고, 몇달만에 흑조는 무감각의 껍질을 벗었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어머니가 경계하던 흑조의 생각은...다 계산된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백조를 더 두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지마시오.영애들이여."

나는 놀라움을 가라앉히면서 백조에게 말했다.

"그대가  내 새장에 갇혀 있던 이후로 그대들은 항상 나의 마음의 사랑이었소."

두 사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아마 두 여인은 진정한 사랑은 , 그리고 비가 될 사람은 자신이라 확신했을 터였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달랐다.
저주를 풀어주리라...악독한 아버지와 연기를 하는 양언니에게 붙들려 있는 그녀를 풀어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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