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을 정했다. 백작이 내 마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검은새는 이제 백작의 딸이다. 더 이상 두려워해야 할 일은 없었다. 내 마음을 시종에게 그대로 전하자 그는 아연실색했다.
"왕자님. 말도 안되는 말씀을..."
"어째서?"
내 말에 그가 중얼거렸다.
"정말이지...여자 일생이란 참 다양하게들 변한다고들 합니다만..."
"나도 믿겨지지는 않지만 그렇지 않나. 사실이..."
"하여간 안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날카롭게 내 허리를 찌르는 것 같았다.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어째서?"
"여왕님이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설사 백작의 딸이라고 해도..."
시종은 앞서 걸어가고 있는 흑조와 백조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참 묘하지 않습니까? 한 사람은 양녀이고 한 사람은 친자인데도 너무나 다릅니다. 살아온 인생이..."
"....."
"왕자님."
그가 내 어깨를 꾹 찔렀다.
"아까 전에 백조가 한 말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왕이란 이야기 말인가?"
"저도 들은 이야기가 좀 있습니다만..."
시종의 말은 이러했다. 과거 호수가 있던 자리에는 최부자라 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젊어서 잃은 아들과 그 아들의 약혼녀인 며느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가난한 사람을 박대하다가 저주를 받아 그 일대가 모두 물에 잠겼다.
며느리는 미리 그 사실을 알고, 도망가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호수가 된 그 지역에 발을 반 보 두고 있다가 역시 저주를 받아 호수의 새가 되었다고 한다.
"옛날 왕실 시절에 호수의 백조를 보고 '을'자를 닮은 새라고 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 말에 어울리는 호수이고 여인들인 셈이죠...그가 마왕 소리를 듣고 그 전설이 맞다면 저 백조야말로 옛날의 그 부자의 며느리인 셈이죠...물론 농담따먹기에 가깝겠지만요."
"그래서, 백조가 그 말을 진심으로 생각한단 말인가? 거짓말은 아니고?"
"혹자는 그 저주를 내린 자가 지금의 백작이라고들 한답니다. 그때 당시는 가난한 학생이었다고들 하고요...
몇백년간 부를 축적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라고는 하기도 하고...
사실...이해도 가는 것이 백작이 된 과정이 전혀 추적이 안되거든요. 암흑족이라는 말은 하지만...암흑조차 모르는 게 그 사람 성분이니까요.더더군다나 식민지 시절의 조상에게서 혁명가가 되는 교육을 받았다고 하고...지금도 왕실에 우호적인 귀족은 아니니 여왕님이 좀 껄끄러워 하시죠."
"근거 있는 이야기인가?"
"글쎄...나인들이 별궁으로 오기 전에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들은 거라서..."
별궁으로 오기 전에 나인들이 부지런히 호신부를 만들던 것이 생각이 났다.
"하여간 정신 차리세요 , 전하. 그 말이 진짜든 아니든 백작은 만만찮은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음, 조심하지. 하지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나?백조나 흑조가 맘에 드는 것은."
"설마..."
"조만간, 어머니께 무도회를 주선해달라고 할 생각이야. 그때 두 사람을 다 초청해서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이름은 쓰지 말고, 백작의 두 영애에게 보내는 것으로 해달라고 하지. 자네 도움이 꼭 필요해."
"....전하...곤란한 일에 절 끌어들이시는군요."
"백작인들 왕이 하는 일에 개입은 못 할 게야."
그리고 거기까지 이야기를 마쳤을 때 또 손에 부드러운 비단천으로 감싼 아가씨들이 나와서 두 영애를 데려갔다.
맵씨있는 단장을 든 백작이 나와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백작. 그대의 정성어린 접대에 감사드리오."
내 말에 그가 빙긋 웃었다.
"별 말씀을."
"앞으로 별궁에 자주 방문해주시오, 궁에서도 그대를 환대할 것이오."
"...그 말씀은?"
무례했던 백작은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그의 어투에는 다소 의아함이 담긴 정중함이 있었따.
"그대의 딸들 중 한 명을 비로 맡고 싶소..."
그 말에 백작의 얼굴이 회심의 미소를 지은 것 같았으나...이내 그 미소는 사라졌다.
백작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영광입니다. 전하...다시 뵙게 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