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키는 독방 한 구석에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조부는 끄덕끄덕 고개를 수그리고 졸고 있다가, 에이키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애비냐?"

"저에요. 할아버지."

집안 어른이고 뭐고 간에 이야기하기 쉽게 조부라고 부르자. 하여간 그의 말에 조부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 네 애비는 뭐하는 놈이길래 기사쓰느라 바쁜 나보다 더 안 오냐!"

"할아버지. 기사는 40년 전에 쓰셨잖아요..."

"뭐라고! 40년동안 글밥먹은 이 에이타로를 우습게 보는거냐!"

에이타로, 즉 과거의 신문기자였던 그는 하우정에게 라이벌 의식(그 당시 깊이 있는 르포기사는 전부 다 소설가가 썼으므로)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그는 하우정의 실종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그는 아마 하우정이 살해당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기사를 냈다가 후에 하우정이 만주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기자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그 하우정이 가짜이며, 한때 대륙행 횡단열차의 종착지에서 하우정 흉내를 내던 사람이라며 반박기사를 내려고 했지만, 그때 한창 제국과 반도 사이의 외교 문제가 발생해 실패하고 말았다. 기자생활을 접으면서 하우정의 실체를 밝히겠노라면서 존재하지 않는 대륙행 횡단열차의 실종을 밝히려 했지만 그의 재산을 노린 가족들에 의해 여기에 감금되었다.

"하여간에."

에이타로는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내면서 조카손자에게 물었다.

"내가 갖고 오라고 한 건 갖고 왔냐?"

"신문기사 말씀이신가요? 그건 5년전에 갖다드렸잖아요. 도대체 뭐가 필요하신 거에요..."

"떽! 어른 말에 토를 달다니!"

원래도 상냥한 성격이 못 되는 할아버지였지만, 여기에 감금되면서는 점점 성격이 괴팍해지더니 실제로 치매에 걸린 것처럼 되어버렸다.

"대륙행 횡단 열차의 번호 말이다."

"그 번호는 원래 없는 번호라고 기사에 떴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난 봤다."

에이타로가 말했다.

"그 심연 깊은 곳에 파묻힌 불타는 대륙횡단 열차!"

"또 그 말씀..."

"벼랑 아래 떨어진 그 횡단 열차에서 과연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을까! 아니,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어!"

에이타로의 광기어린 말투에 에이키는 진절머리를 쳤다. 과연 이 미친 노인이 한때 대륙과, 제국, 그리고 반도의 오스카 와일드라고 불렸던 하우정과 한판 붙을 정도의 기자였단 말인가?

"반도인들! 그 작자들이 살아있었어. 벼랑에 떨어지기 전, 삼등칸이 분리된 상태에서 살아남았다더군! 그리고 그 여자도!"

벌써 365번째 듣는 이야기였다.에이키는 할 수 있으면 이 노인네의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 싶었다. 듣는 자기도 그냥 미쳐버릴 것 같아서...
반도인들은 독립했다. 에이타로의 주장에 의하면 이미 그때 독립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실제로 반도의 독립은 제국에 핵이 떨어지면서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 에이타로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그 대륙횡단열차의 승객들의 목숨을 담보로 독립되기로 했던 반도인들은 제국의 사기행각으로-반도인들을 모조리 말살시킬 계획이었으나 무산된-독립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여자. 아직도 살아있는지 모르겠군."

"....."

슬슬 진절머리 쳐질 이야기가 나올 차례였다.
에이타로가 이빨을 딱 부딪치면서 말했다.

"그 눈속에서 나는 봤어. 그 여자가 머리를 기다랗게 기른 채, 아무도 오지 않을 그곳에서 반도인들을 보냈지. 그 얼음속에서 한 남자를 꼭 껴안은 채로...그 남자의 살을 오득오득 씹고 있었어!"

에이키는 비위가 좋지 못해서 헛구역질을 했다.

"아...할아버지. 제발...미치려면 곱게 미쳐요!!!!"

에이키는 참을성을 잃고 에이타로의 목에 손을 갖다대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에이타로!"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이 소리는..."

에이타로가 벌떡 흔들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늙어 부실한 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아 그는 이내 다시 털썩 의자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에이타로!"

낭랑한 목소리는 이미 들었던 듯 했다. 에이키는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저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자신은 큰 사고를 쳤으리라.

"어떤 놈이야!"

하지만 에이타로에게는 쓸데 없는 소리로 들린 모양이었다. 에이키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지금은 누가 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에이타로로부터 벗어나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잠시 모험을 하기로 했다. 누가 조부와 친해서 놀러오는 것인지, 아니면 해꼬지를 하러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조부를 죽여주면 자신은 편해져서 좋고, 놀러오는 거라면 잠시 자신을 해방시켜주는 것이니 좋고...
그런 마음으로 에이키는 잠시 자리를 떴다.
자신의 이름인 에이키의 에이가 존경받는 대기자였던 에이타로를 닮으라는 뜻으로 붙여준 이름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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