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괜찮으십니까? 가방을 좀 들어다드릴까요?"

그때로부터 어언 40년이 지났다. 품위 있게 늙은 신사가 저 꼭대기 위에 있는 요양원으로 가고 있었다. 치매 환자들이 최종적으로 가게 된다는 그곳.
가방을 들어주려 한 청년은 그 노인이 환자인지, 아니면 면회자인지 궁금했지만 일부러 물어보려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도 그곳에 갈 계획이니, 가게 되면 알게 되리라.

"아, 무겁지는 않습니다."

노인이 대답했다.

"어차피 아내에게 필요한 건 며칠 전에 다 부쳤으니까요."

노인은 그렇게 말했지만 약간 발을 끌었다. 짐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저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다보니 몸이 조금 힘든 모양이었다. 청년은 억지로 노인에게서 짐을 받아들었다.

"힘드시겠습니다."

젊은이가 말했다.

"뭘요.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노인과 청년이 서로 바뀐 듯 노인의 어조가 밝은 반면, 청년의 어조는 슬프고 처졌다.

"그럼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거군요. 전 집안 어른이 치매로 저기에 계신데 갈수록 상태가 심해져서 걱정입니다. 이젠 제 얼굴도 몰라보시는 거 같아요. 속물같지만 재산상속까지 받아서,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점점 힘들어집니다."

"...하하, 힘들었던 건 제가 아니라 제 아내일거라고 생각하니 힘들진 않군요. 일생 동안 제가 그렇게 애를 먹였으니까요."

노인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이 있어서 제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군요.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후 다리를 쭉 폈다. 청년과 이야기하면서 속에 담은 것이 좀 풀어졌는지.
눈동자에는 힘이 넘쳤다.
그들이 약 20분후 도착한 병원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를 연호한 아이들과 아가씨들(이들은 요양원에 와 있긴 했으되 국가에서는 이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다른 환자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치매가 아닌 것은 확실했지만...)이 노인과 청년을 둘러쌌다.

어리둥절한 청년에게 노인이 말했다.

"아, 맞군. 난 에이동에 볼일이 있답니다. 조부께선 아마 비동에 계실 겁니다. 치매라시니..."

"선생님...이건..."

"아무 일도 아닙니다. 에이키군."

노인이 청년의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제 이름을..."

"...나중에 이야기하지요...저기 아내가 오는 군요..."

이미 첫부분에서 언급했던 소녀같은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옆에서 질문하던 소녀도 할머니의 손을 잡고 그에게 다가왔다.

"정말 오래 기다렸어요. 빨리도 오시는군요."

눈을 살짝 흘기며 그녀가 말했다.

"어서 오세요. 여보.당신의 편지가 있어서 그나마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요..."

그녀의 몸에는 여기저기 피부가 벗겨진 자국이 역력했다. 그것은 방사능 피해로 인한 자국이었다.

"자자, 들어갑시다."

노인이 말했다.

"당신에게 이야기해줄 바깥 이야기가 정말 많답니다. 여보. 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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