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다가갔을 때 싸움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거의 미치광이가 되다 시피 한 대승은 한손에는 긴 칼을, 한손에는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횃불을 들고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뭐야! 기차가..."

말을 더 이을 필요도 없었다. 잠시 멈췄던 기차는 다시 달리고 있었다. 피와 불과 땀으로 얼룩진 대승의 눈동자는 지옥의 화염처럼 불타올랐다.

"어차피 제국놈들처럼 물들어버린 부역자들과 3류 백성들은 다 죽어도..."

빠악!

이미 정신을 잃다시피한 대승의 머리에 육혈포를 집어던진 하선생이었다.

"네놈한텐 대의라곤 없군! 비리비리한 이 똥싸는 기계가 너보다 낫겠다!"

부역자라는 말에 진노한 것인지, 아픈데를 찔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제정신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둘 다 동일한 듯 싶었다.

"네놈따위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겠나! 이 기차는 제국의 허망함을 위한 채색도구다! 멋진 화필로 그려주지. 그놈들따위야!"

대승은 그렇게 주절거렸다.
그 말에 설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하얀 고래에게 다리를 물어뜯긴 후 고래를 계속 찾아다니면서 사냥하려는 광기의 사나이...
물론 인간중심이니, 사냥대상감은 고래이다.
그러나 만약 그 광기의 사나이와 고래가 하나의 종이라면, 비정상은 그 사나이일 것이다.
...

대승과 하우정은 서로간의 다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때 설이 말했다.

"선생님은 독립군이시니 단검을 쓰실 수 있으시겠죠?"

그 질문에 명이 잠깐 주저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김대승씨를 맡아주세요."
"...어떻게 하려고요?"

그의 질문에 그녀가 대답했다.

"악마같더라도 일은 해야 하는 거지요...저는 하선생을 맡겠어요."

김대승은 그제서야 그들이 기차에 올라와 있다는 걸 깨달은 듯 했다.
잠시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빛이 그들을 훑고 지나갔다.

'우린 아무 것도 아닌가?'

명은 수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더는 느끼지 않으려 했다. 김대승은 애초에 목표를 하우정으로 정한 듯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정은 뒤를 돌아보았다.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우정의 왼쪽 가슴에 은장도가 꽂혔다.
제일 먼저 처리해야 했을 사람을 지나쳐 두 번째 사람에게 간 것이었으나, 한번 시동걸린 이상 설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차 출입구쪽에 있는 그를, 점점 힘이 빠져가는 그를 있는 힘껏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픽! 하고 대승의 머리에 총탄이 명중되었다.
대승은 죽어가면서 광기의 미소를 지으며 기사석쪽으로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이미 조종하는 사람이 없는 기차는 계속 달려나갔다. 조종간은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멈출 수가 없어요..."

명이 말했다.

"...멈추는 방법이 꼭 있을 거에요...꼭."

정말 꼭두각시처럼 우린 할 수 있다. 만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명은 그녀가 무섭게 느껴졌다.

"항상 방법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의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방법을 고르는 걸 없애버리면 상관없지 않아요? 기차를 못 움직이게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불에 태워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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