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처박히다시피 던져졌다.그녀는 바닥에 심하게 무릎을 긁히고 얼굴에 찰과상을 입었다.
"...아..."
그녀가 고개를 막 들자마자 들어온 것은 거의 벗겨지다시피한 벽면과 , 바닥에 구르고 있는 돌들이었다. 아니, 돌 이었던 것 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벽에 붙어있던 자잘한 폴로늄 가루들...
"여보세요...정...정신을..."
동포를 구출해서 이 기차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들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화학분야는 잘 몰랐지만, 그 광석이 아마 사람들을 해치는 종류라는것을 알아차렸다.
돌은 이 기차에 한 부분에 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깔려 있었던 것이다...
"설...?"
그때쯤 정신이 반쯤 돌아왔다 갔다한 명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는 헛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이 기차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어린 시절 만난 이후 그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탓이었다.
"정신이 드셨군요. 근데 저를 뭐라고..."
"...오, 아무것도 아니..."
명은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고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배급이 신통치 못해 몸이 여기저기가 망가진 상태였다. 거기다가 폴로늄까지 겹쳐 있으니...
"당신은 혹시 설이라는 아가씨 아니오?"
그의 말에 그녀가 반색을 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여학교를 다녀 경계심이 없기도 했다.
"독립군복이군요! 혹시 제 약혼자하고 만나신 적이 있나요? 백명이라는 분이에요."
"...아, 들어본 것 같군요."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서로간의 인맥을 확인하는 것은 인류 공통의 행사인지...
"정신을 차리셔서 다행이에요. 이 기차는..."
"기차를 멈춰야 하겠지."
명이 말했다.
"그런데 그런 위험을 안고 아가씨는 여기 무엇하러 온 거요..."
"이미 저도 1등칸에 있긴 했어도 탔던 걸요...어차피 그럴 거라면 역에 있는...사람들을 구해야죠. 독립군에게만 독립과 동포의 안위를 맡길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무엇하려오?"
명이 말했다.
"아무 대가도 돌아오지 않소."
"......"
"어쩌면 괜한 일을 했다고 이들 가족에게서 욕을 들을 수도 있을 게요. 당장 이 분들은 죽더라도 꼭 고향땅을 밟고 죽겠다 하시는 분들도 있소. 그리고 이미 죽은 1등칸과 2등칸 손님들의 그 분노와 원망은 우리에게 돌아올 거요....차라리 나같은 독립군에게 맡겨버리고, 아가씨는 이쪽으로 돌아오지 않는 게 좋지 않았겠소? 기왕 들을 불평이나 비난은 독립군들에게 맡겨버리는 거요. 독립군은 그걸 자청해서 받으려고 생긴 거니까. 아녀자가 나설 일이 아니오."
"모던 걸이라서 안되는 건가요..."
그녀가 말했다.
"제 얼굴을 보세요."
"상처투성이구려."
그의 냉랭한 말에 그녀가 다시 대꾸했다.
"제 약혼자는 제게."
"......"
"여자라도 세상을 위해 일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부르주아라도, 모던 걸이라도, 모던 보이라도, 심지어는 매국노라도 진정한 사람이라면 언제나 고국을 위해서 일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어요. 저는 어린 마음이지만 참 훌륭한 분이구나. 하고 그 마음을 고이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째서...같은 독립군인데도..."
"...나도 약혼녀가 있소. 그리고 난 그니가 있다면 그니에게 그렇게 말할 거요. 부디 독립군이 그대를 위해서 지키고 있으니, 그대 손에는 흙과 피를 묻히지 말라고...그렇게 말이오..."
명은 비틀비틀 일어나 벽면을 짚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일어난 일, 그래. 좋습니다. 당신하고 같이 3등칸을 분리해봅시다. 1,2등칸에도 그 돌가루가 있었겠지만, 여기보다 더 심하진 않을 것 같으니...당신 표정이 어째 이상하구려."
"아예. 다 멈춰야 해요!"
그녀의 반발에 그가 말했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걸 시도하는거요...대장은 1등칸에 있으니, 3등칸에는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라고 신경도 안 쓸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