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눈을 딱 감고 차에서 뛰어 올랐다. 기차 칸에 바로 발을 디딜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조금의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멋지게 착지하지 못한 자신이 불만스러웠지만 이내 당연하다고 자신에게 말했다.
다, 처음이지 않았던가. 모든 게 다 처음이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스스로 냉정해지기.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그랬는데 이제와서야 깨달은 건지도...

"천천히 올라가시오..."

저 멀리에서 우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정도 이내 차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독립군은 계속 총을 쏘았고, 몇개의 설의 귓등을 스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옷자락을 맞춘 것도 있어서, 설 자신은 몰랐겠지만 옷자락에는 빗맞은 총탄에 의한 핏자국이 생겼다.
그녀는 그곳도 모른 채 조금씩 조금 씩 속도를 내어서 기차를 따라잡고, 3등칸의 문 열린 쪽으로 몸을 던지다시피 해서 기차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가씨. 이리로 오면 안됩니다..."

곤란한 표정으로 3등칸 앞을 지키던 독립군이 말했다.

"죽고 싶습니까?"

그의 말에 설이 대답했다.

"죽지 않아요. 이 기차를 멈추지 않는 한."

그녀는 꼭 쥐고 있던 육혈포로 상대방의 관자놀이를 겨냥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몸을 상하게 하는 그 이상한 돌이 든 이 기차를 영원히 멈추는 거에요. 이 기차는 모두를 어둠으로 데려가는 죽음의 기차니까요!"

"아가씨..."

그녀의 말에 한 때 그녀를 조롱했던 독립군 중 하나가 얼이 빠져버렸다.
눈앞에 있는 여인이 과연 문란한 행동으로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조롱을 당하던 그 여인인가?
어쩌면 그건 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잘 했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얼빠진 듯이 바라보던 독립군의 머리가 일순 수그러들더니 그녀를 껴안듯이 하면서 밑으로 떨어져내렸다. 뒤에는 역시 육혈포로 상대의 머리를 강타한 하우정이 서 있었다.

"일일이 설명해봤댔자 다 끝난 거요. 어차피 여기에 탄 사람들 전부 다가 얼마 정도는 그 돌이 영향을 받았을테니.
 1등칸에 탄 우리는 그래도 좀 덜했겠지만...3등칸에 실어놓았으니, 아마 반도인들 대부분은 가망이 없을 게요.
 갑시다. 1등칸으로 가야 하오."

"...3등칸은 어쩌구요..."

"3등칸은 객차에서 곧 떼어낼거요. 기관사를 포섭해 그걸 떼내는 건 어렵지 않소. 갑시다...나혼자서는 무리니까 당신이 꼭 같이 가줘야 해요."

"그럼 이렇게 해요. 지금 이 돌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을 거에요...전, 3등칸에 경미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겠어요...어차피 죽고 사는 건 천주님의 뜻일 뿐이니까요!"

우정은 혀를 쯧 하고 찼다.

"못말리는 여인이로군. 하긴 당신 하나 안 간다고 전력에 차이는 나지 않겠지만...그래도 머리는 두개인게 더 나은 법인데 말이오...좋습니다. 내가 1등칸으로 가서 저들의 행동을 막겠소. 그리고 당신은...내가 3등칸을 분리할 때까지 움직일 수 있는 인력을 총동원해봐요. 그 돌의 영향을 받았더라도 뭐, 떡대같은 인간 몇몇은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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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라고 항상 멋지라는 법은 없지요...;;;;;
애꿎은 설을 애먹이긴 했지만, 원래 제 취향이 멋있는 인간은 끝까지 멋있게...였던터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잠언 문구로 빌딩 엘리베이터 타는 거 보고 빵 터졌습니다.
설이 기차에 쉽게 오르지 못하는 건 거기에서 따온 겁니다...가끔은 망가지는 게 더 나을지도요...
과연 설이 멋있는 인간인가? 하는 건 둘째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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