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승은 양심의 가책인지는 몰라도 3등칸에 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종착역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승리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피떡칠된 기차를 보여주며, 제국의 우두머리 중 한놈 한놈에게 외칠 터였다.
보아라 쪽바리들아~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따라붙고 있었다.
부르르릉...
털털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신을 향해서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다는 직감에 그는 납작 엎드렸다.
그가 있는 곳은 기관실과 1등석 객차 사이.
군사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은 자라면 목숨을 노리고도 남을 위험한 장소였다.
"뭐야!"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또 한 발이 날아들었다.
"바깥에 독립군이..."
"독립군이 독립군을 쏜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김대승은 자신과 자신의 부대원들이 한 행동은 생각지도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대장님...우리도..."
"우리도 쏜다! 쏘아라. 저 놈들을 쏴."
그리고 그때 김대승은 보았다. 한때 같은 표정으로 김진좌를 보았던 하우정을 보았다. 그리고 역시 그 옆에 있던 여자도.
"뭐야! 얼어죽어도 시원찮았다 판에!"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 중 손이 유일하게 자유로운 설이 육혈포를 치켜들었다.
사정거리가 짧고, 초보자인듯 했으나 그녀의 동작은 자유롭기 짝이 없었다.
탕!
이번에는 위협사격이었다. 노리고 쏜 것은 아니었으나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
분노한 대승은 한편에 놔두었던 육혈포로 응사했으나 다년간의 경험으로 익숙했던 우정은 그 총탄을 부드럽게 피해 지나갔다.
"설. 이제 그만하면 되었소."
우정이 외쳤다.
"속도가 줄어들었을테니, 내가 차를 기차 가까이 가져가야겠소. 혹시 운전은 해보셨소?"
"아니오."
"그럼 넓이뛰기와 높이뛰기는? 차를 내가 모는 동안 당신이 먼저 뛰어가야 할텐데?"
"...기차를 탔던 이래로 제가 했던 건 다 처음인데요..."
"저런, 굴러떨어지지 않게 조심하시오. 갑시다!"
그리고 우정은 여기 도착하기 전 무전으로 김진좌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여기는 김진좌다...북부 금광 토벌대 거기 있나?"
"...여기는 북부 금광...아니, 사실대로 말하지. 하우정이다."
"......"
김진좌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잠깐 웃었다.
"과연...너답구나. 이제 와서 동포애라도 생긴 거냐?"
"...뭔가 알고 있군."
"...안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내가 원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역시 내 임무에 대해서 알고 있었군."
"우정. 너는 테러가 낫다고 보나. 독립이 낫다고 보나. 조그마한 땅과 몇몇만 희생하면 독립이 된다는 말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다고 보나. 테러를 해도 어차피 희생은 나는 것이니 말이야..."
"...하긴."
우정은 피식거렸다. 할 말이 없었던 탓이다.
"내가 한 일이었으니 할 말이 없군. 그래도 하나 물어보자."
"옛 우정을 나눈 친구로서 대답하지."
김진좌가 조금 감상에 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건 네가 결정한 건 아닐테지?"
"...난 힘이 없다.그저 군인일 뿐이니까."
"...알았다. 하지만 한가지만 부탁하자."
"....음..."
"그 기차 종착역에 도착하지 못하게 한다면...테러분자가 그렇게 한다면, 그래도 독립은 안되는 거냐?"
"...뭘 하려고..."
김진좌가 놀라지는 않은 듯 시들하게 물었다. 알지는 못해도 알고 싶어하는 것 같진 않았다.
"종착역에는 제국인들도 있다. 그 사람들 목숨도 구할 수 있다면 이건 체면치레로 끝날 수 있을 거야..."
"...피폭당하더니 정신이 나갔군."
한참있다가 깔깔한 어조로 김진좌가 덧붙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설도 이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제국과 독립군이 잠시 의견통일을 했던 것이다...그들의 목숨을 가지고...
"좋아. 마지막이니까...뭐 또 바라는 거 있나?"
"없어. 가까운 곳에 제대로 된 차만 지원해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