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얀 숨결을 내뿜으면서 독립군들은 한두와 함께 천천히 눈밭을 걸어나갔다. 저 어둠 저편에서 말을 탄 거대한 사나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거대한 것도 아니었다. 말이 큰 만큼 체구는 조금 더 약해 보이긴 했다.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그 얼굴만큼은 그러나 거대한 바위만큼 단단해보이고 컸다.

"오! 김장군님!"

"김진좌 장군님!"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치 내동댕이쳐지듯 한두는 바닥에 꿇어엎드렸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얼굴.

"명이 대장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는 어디로 갔나?"

위엄있는 목소리였다. 굵지만 혼탁하지 않고, 두려움 없는 목소리.

"종착역으로 갔습니다."

누군가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누군가는 해야 하지."

이미 답을 아는 목소리에 한두는 잠시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는? 누군가? 그게 그 사람이?

"...장군님..."

"나는 그 기차에서 그 자를 죽일 수가 없었지."

혼자말이었지만 한두는 들을 수 있었다. 그랬다면...그랬다면?
지금 그 가엾은 설양은 죽었을지도 모르는 그 설양은 죽지 않아도 되었었다!

"그 자를 죽이기에는 시간이 모자랐어...제국군이 더 몰려오고 있었으니까...하지만...지금은 다르지. 어소에서 황제가 조만간 퇴위조서를 읽을 것이고...이젠 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두는 눈을 한움큼 집어들고 말위의 그를 향해서 뿌렸다.

"당신이...당신이 할 소린가? 그게!"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 단지 장군이 있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만나고 싶어했던 그 영웅은 아니었다.
영웅은 영웅일 뿐이고, 아버지는 아버지일뿐이었다.
그리고 김진좌는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 안에는 동포들이 들어 있어!"

그의 외침에 김진좌는 짐짓 담담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 젊은이는 누구인가?"

"...아, 김한두라는 젊은 친구인데 말을 잘 못합니다. 아시다시피 지금도 제국어를 섞어서 이야기하니까요..."

"어디서 많이 본 얼굴같긴 하군. 제국인들을 닮아서 그런가..."

그의 뼈아픈 조롱에 한두는 그를 집어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대신 단 세마디를 했다.

"말, 총, 총탄! 내가 갑니다! 내가!"

김진좌는 흥미로운듯이 그를 보다가 뒤에 오는 참모에게 말했다.

"저 친구가 뭘 하려나보군. 하고 싶은대로 하게 내버려두게."

"하지만...기밀이..."

"젊은 친구가 하겠다는데 말려서야 쓰겠나. 과연 뭘 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고."

김진좌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좀 더 빠른 시간에 저런 친구들이 나왔으면 좋았으련만. 제국어도 잘 하고 말이지..."

그리고 그 말을 못들은 척 하면서 한두는 온몸이 새까만 말 하나를 부리나케 얻어타고 이미 달리고 있을, 그러나 따라잡지는 못할 횡단 열차를 향해서 달렸다.

"내 아들도 저러면 좋겠군..."

김진좌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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