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정의 말을 들으면서 설은 점점 안색이 파래졌다. 더 이상 창백해질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해진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자신의 원수여도 괜찮았다. 기차의 사람들을 몰살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그는 자신의 얼음속에 갇히다시피한 그녀를 알아본 사람이었다.
명을 잊지 못하고, 계속 그려나갔던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물론 이것은 사랑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한가지...
자신에게 계속 접촉하려고 애쓰면서 자신의 가장 추한 부분까지 보이려고 한 그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녀를 죽이라고 외칠 때. 그녀는 그의 내부를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명을 사랑한다고, 그리고 그의 부탁을 받아 우정의 마음 속을 읽으려고 시도한 건 위선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명의 부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니...애초부터 결혼은 생각없이 한 말이고, 그저 폭발시키기 위해서 기차에서 시간만 떼우고 있었던 것이라니...

"어차피 다 죽일 건데 쓰러진다고 달라질 것 없어."

독립군들은 우정을 때려 쓰러뜨리고, 설에게 다가와 머리채를 잡아 끌었다.

"그 여잔, 반도인..."

우정이 뭐라고 더 외치기 전에 독립군들은 다시 우정의 뺨을 갈겼다.

"닥쳐. 이 폭탄마야."

"...선생님들..."

힘없는 목소리로 설이 말했다.

"...뭐라고? 말한들 소용없어. 그냥 묻어버릴테니..."

어느 정도 온정이 있는 사람이 대꾸했다.

"...저기, 마지막 부탁이니..."

"응?"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그리고 종착역으로 가시는 거라면...차라리 거기서 죽여주세요. 죽기 직전에라도 고향에,고향에 꼭 가고 싶어요..."

뭐?
우정은 경악했다.

"말도 안되는 소릴! 설양! 거긴... 그 도시에서 죽으면 죽어도 죽는 게 아니란 말이오!!"

우정의 비명소리에 그들은 다시 비아냥거렸다.

"오!  그 사이에 연애를 하셨군. 하긴 옷 벗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 좋아. 둘다 그 폭탄 터지는 데서 사이좋게 죽으라고 하지...그나저나 하선생이라고 했나? 그 기차에 뭐가 들어있다고?"

"폭탄을 터뜨리면 네놈들은 다 죽어."

우정이 냉랭하게 말했다.

"그리고 도시 하나는 그대로 날아가지. 그 기차안에 있는 그 물건이 터지면 말이다."

"뭐라고?"

독립군들이 사색이 되자, 우정이 다시 대꾸했다.

"말했잖나. 그 기차에 들어있는 물건을 관리하기 위해서 내가 탔다고...네놈들은 김진좌만도 못해. 그놈은 알아차리고 기차를 따라왔었는데..."

"...진짜냐?"

"내 이름을 걸고 말하지. 그리고 그 폭탄을 제거할 수 있는 건 나 하나뿐."

입술이 터진 채로 비장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그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가장 나이 든 독립군이 말했다.

"진실인진 모르겠지만,  어차피 아니면 그때 죽여도 되니까. 종착역으로 끌고 가자."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독립군들도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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