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은 그렇게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가 갑자기 부하들에게 한두의 옷을 뒤지게 했다. 한두는 자신을 못 믿는 명이 조금 납득이 가진 않았지만...
"대장님! 일본어 편지입니다! 이 작자의 바지에서..."
명은 살짝이 얼어있는 물같은 한두를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그 편지를 받아들었다.
"친애하는 명도련님께. 나는 당신도 아다시피 글 쓰는 살인자로 유명한 하정우라고 하오...다름이 아니라 모월 모시에 모역에서 일어날 테러를 이미 알고 있소. 반도인들의 아둔함이야 본래 아는 바지만, 그 일을 막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오. 왜냐하면 그때 역으로 들어가게 될 대륙횡단열차에는 핵폭탄이 들어있기 때문이오. 물론 제국인들이 거기까지 기술을 발달시키지는 못했소만, 소량을 손에 넣었다고 알고 있소...그들은 내가 탄 기차에 그 폭탄을 실었소...나는 그 기차를 무사히 역까지 보낸 후 폭발시키는 역할을 맡았소. 내가 왜 이 아둔한 자의 바지춤에 넣어서 전달하는지는 충분히 깨달으셨으리라 믿소. 이만, 제국과 반도의 아둔함을 비웃으며...하우정."
명은 잠시 몸을 떨었다. 그리고 다급하게 한두에게 물었다.
"설은! 설은 어떻게 되었소!"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설 아가씨가 묶인 끊을 칼로 끊어 저를 구해주었습니다..."
"...그 작자랑 지금 같이 있는 거요?"
세상에 다시 없을 호연지기를 지는 그였지만, 순간적으로 그녀가 무척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그]를 읽으라고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녀에게 [그]를 암살하라고 뉘앙스를 풍기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왜냐하면...그녀는 명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허풍을 치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이었다. 그저 솔직하게...그녀가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 편지를 읽고,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만 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아마 그렇진 않을 겝니다..."
명의 반응을 보고 한두는 솔직히 놀랐다. 대장에게 중요한 사람은 될 수는 있겠지만 이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그녀도, 그도 몰랐으니 말이다.
"같은 독립군이니...지금이라도 다음 역에 연락을 취해서 멈추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마 두 사람이 같이 건 아니건 기차안에 있을테니까요..."
"...그 자는 책임감이 없는 자요."
무자르듯이 둔감하고 냉담하게 명이 대꾸했다.
"자신의 직분을 지켰어야 했소. 그 자는 그 폭탄째로 죽었어야 마땅하오."
"......"
"아마 기차 안에 있진 않을게요."
명이 말했다.
"하씨를 감시하던 자 중 하나가 나중에 하씨와 결탁해서 통신소에서 근무한다는 첩보를 입수했소. 일 대대가 거기를 급습할 계획이라는 걸 일주일 전에 들었소. 아마 기차를 급습한 자들은 얼어죽으라고 밖으로 내던졌을테니, 아마 가 있는 곳이 그곳일 가능성이 높소."
명은 부하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지만 전부 다 암구호라 기차를 급습한 김대승 대장의 말처럼 듣기가 쉬운 게 아니었다.
아마 스파이일 가능성도 있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절대로 종착역으로 가지 마라. 마지막에 거길 가는 것은 나 혼자 뿐이다."
한두는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백마를 타고 떠나는 명을 보았다.
그리고 명에게 외쳤다.
"대장님, 저는...저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
명이 뭐라고 대답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만에야 한두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김진좌 장군님이 이곳으로 오시오. 그분을 따르시오..."
그리고 마치 환영처럼 한두는 흐릿한 장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이곳을 떠나기 한참 전.
너구리 목도리를 한 자신을 안아올리던 콧수염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