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속을 한 800미터 걸었을까. 우정이 설의 팔을 툭 쳤다.

"그만가시오."

"......"

설은 대답대신 그가 건드린 팔로 살짝 그를 밀었다.

"끈 다 푸신 거 알고 있어요."

"......"

"......"

두 사람은 정적속에서 서로를 응시할 뿐이었다. 어둠과도 같은 침묵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알고서도..."

"푸시고도..."

둘은 그렇게 말을 했지만 잇지는 못했다.

"왜 계속 걷는 거요."

"왜 떠나지 않으시죠?"

"왜냐니!"

처음으로 우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같은 젊은 여자는 모르오. 여긴 무작정 내키는 대로 걷는다고 길이 나오는 곳이 아니라는 걸 말이오. 이미 발은 푹 젖어버렸을텐데 무작정 걸으면 어쩐단 말이오!"

"...발바닥이 젖은 건..."

그녀가 말을 잇기도 전에 우정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내 발도 젖지 않았소! 내가 푼 걸 알았다면 가만히 있으시오! 양말이라도 갈아 신어야 겠으니! 당신 것도 드릴 것이고!"

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에 양말이 있어서?"

그는 얼굴을 약간 붉히면서 속옷에서 천뭉치를 꺼냈다. 한두와 그녀가 잠시 승리감을 느끼며 그의 옷을 갈아입혔을 때 빠뜨린 속옷에서 양말 2개가 나왔다.

"설상화가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가 짤막하게 말했다.

"이런 비상시국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다행히 제국 통신소가 여기서 한 4킬로미터쯤에 있으니 동상은 걸리지 않을게요. 신으시오."

"...의외군요."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고는 그의 손에서 양말을 받아들어 건조한곳에서 양말을 털고 신었다.
장화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테지만, 그 눈보라에서 쫓겨났으니 신발이고 뭐고 신을 일이 있을 리 없었다.
지금쯤 대륙횡단열차는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처음 탔을 때는 반도로 무작정 떠날 생각으로 탑승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다란 사건에 휘말렸다.
다...이 남자 탓이다.
그녀는 차가울 정도로 이지적인 그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왜 끝까지 제국인으로 남으려고 하시나요?"

그녀의 물음에 그는 잠시 총맞았을 때의 망연한 얼굴을 했다.

"...난 독립군으로 남으려고 한 적도 있소."

"......"

"사람은 꼭 무언가로 남기 위해서만 사는 건 아니라오."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 그녀의 구두안에 스며든 물기를 남은 천으로 박박 닦아내고 그 구두안에 채웠다.
 
"자, 구두도 이젠 건조할게요. 신으시오."

"......"

눈보라는 그쳐 있었다. 괜한 짓을 했다고 우정이 투덜거렸다.

"왜 진작 이런 식으로 살지 않으셨어요?"

그녀가 갑작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그는 평범한 어조로 되물었다. 허세가 있고, 멋을 부리던 하우정은 없어졌다. 다만 단순하게 대꾸하고 단순하게 감정표출하는 하씨가 있을 뿐이었다.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솔직하게."

"......"

하우정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지금 살고 있소. 아까 전에 잘 봤잖소. 탕탕. 몇발로 다 해결했으니...당신도 죽이려고 했었고."

"물론, 당신은 그렇게 했죠. 하지만 그게 자유와 솔직함과 어떻게 연결이 되나요? 제 눈에는 허세와 허영과 분노 조절장애로 보이더군요...전혀  마음에 맞게 살고 있는 것처럼...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발 조심하시오. 눈에 미끄러질지도 모르니."

우정은 그렇게 그녀에게 말하고는 풀어버린 끈들을 바닥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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