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는 생각하곤 했다. 어릴 적에 단 한번밖에 못 본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알아볼 수나 있을까? 하고.
무지막지하게 사람들을 살해한 그 소설가같은 사람은 아닐까.
그는 자신의 팬이었다는 할머니를 자신의 신변을 위해서 죽여버렸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대화하던 그 할머니를.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독립군들도 생각했다. 아무 생각없이 독립이라는 이름아래 그냥 죽여버리는 걸로 해소하는 자들.

"멈춰!"

누군가가 그 하얀 설원에서 총을 들이댔다.
한두는 말을 멈추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두터운 옷으로 몸을 감싼 자는 머리에 흰눈을 잔뜩 맞아 한두처럼 거의 눈사람처럼 보였다.

"자넨 반도인인가?"

옷을 알아보기 힘들어 제국군인지 반도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더더군다나 한두는 반도어가 발음이 신통치 않아 상대가 독립군일 경우에는 총탄을 맞을 수도 있었다. 자신을 구해준 설을 위해서라도 개죽음은 피해야 했다.
어떻게든 그녀를 그 흉악한 자들로부터 구해주어야 했다. 과연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민간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가장 바보스러운 대답을 하고 말았다. 물론 민간인이기야하겠지...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것도 서툰 반도어로 이야기했으니 상대는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민간인...민간인이라. 말에서 내리게."

상대는 독립군이었던 모양이었다. 그것도 상급자인 모양으로, 뒤에서 한 눈사람이 나와서(역시 이 눈보라 탓이겠지만.)그의 말을 다른 곳으로 몰고 갔다.

"...바람이 심상치 않군. 따라오게나."

한두는 몰랐지만 이 사람이야 말로 설의 약혼자이자, 그리고 식당에서 한두에게 전달된 쪽지를 쓴 백명이었다.

"이 바람에는 추적자도, 쫓기는 자도 쉬어야 하지...불을 쬐면서 심문하는 것도 사람 할 짓이지..."

한두는 약간 얼이 빠진 상태로 백명의 뒤를 쫓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대륙의 반도인 민가의 농막이었다.

"자네 어디 사람인가?" 

친근한 백명의 말에 한두는 고개를 떨궜다. 옷차림만으로만 본다면 그는 세련되기 그지 없는 모던 보이였다.
이 상태로 이야기를 한다한들 제대로 신뢰를 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용감하게 그 쪽지를 생각해냈다.

"대륙행 기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고백이 아니라 거기에 타고 있었다는 말로 그는 다시 말했다.

"독립군의 쪽지를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독립군에서 전달하는 쪽지를 한 아가씨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런가...그런데 그건 내 질문의 답은 아닌 것 같군."

백명은 흠하고 소리를 냈다.

"여기가 어딘줄은 아나?"

"......"

"자네 발음으로만 보면 자넨 일본인 같군. 그런데 쪽지를 전달했다...하니, 혹시 지금 자넨 간첩이 아닌가?"

"...뭐라고 말씀드리기 그렇군요. 하지만 간첩은 아닙니다. 일본인 짓 하는 독립군이 있는 것처럼."

한두는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말자고 자신을 다그쳤다. 아무리 이것이 자신의 진심에 가깝다고 해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될 거 아닌가...

"자네 이야기는 우리를 적과 같은 위치에 두는 것 같군."

백명은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이내 돌 위에 흙을 뿌렸다. 푸스스스...하는 소리가 나면서 불이 조금 잦아졌다.

"그래. 지금은 자네를 믿기로 하지. 대륙행 열차는 어떻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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