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눈을 맞으면서 추위에 떨었다. 단 한번도 실패해 본적 없는 자신이 어처구니 없이 어설픈 놈들에게 당할 줄이야.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었다. 냉정하게 넘어갔더라면 이렇게 당할 일도 없었을 터.
관절기로 밧줄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의 옆에 묶인 사람은 '그녀'였다.
'그녀'만을 남겨두고 가기에는 뭔가 미진했다. 더더군다나, 설사 푼다고 한들 이 눈보라를 벗어나 갈 길이 아득했다.
기차는 독립군들에 의해서 망가진 채로 서 있었고, 그에게 도움을 줄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죽어나자빠진 상태였다.
"빠져나갈 수 있으시겠죠?"

설의 차분한 첫 목소리에 우정은 순간적으로 놀라고 말았다.

"...무...무슨 소리요. 이렇게 묶여 있는데 어째서..."

"당신은 암살자잖아요."

그녀의 말에 그는 움찔했다.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요."

"당신이 빠져나갈 능력이 없어서 남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

"그래도 마음이 한구석은 따뜻하니, 제국파 사람들을 구하려고 남은 것은 아닌가요? 계산 착오로 다 죽어버린 것 같지만..."

"...난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요. 아니, 그것보다 아까 전에 칼로 끈을 풀지 않았소? 왜 이건 못 푸는 거요?"

"...아까 전에 뺨 맞으면서 빼앗겼어요. 그거보다 줄이 점점 더 질겨지는 것 같군요. 날 내버려두고 가시면 될거에요. 그래도 아까 전 역에서 들으니 거리가 한 몇 키로밖에 안된다니까 당신이라면..."

"...헛된 소리 하지 마시오. 우린 이대로 죽는 거요."

그는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난들 뾰족한 수가 있는 줄 아시오? 이런 눈보라속에서 걷는다는 건 자살 행위요. 죽어버린단 말이오."

"어차피 죽는다면 마지막 수법까지 생각해야 하지 않나요?"

"난 죽는다면 되도록 편한 방식을 선택하오."

"...어리석군요."

한숨을 포옥 쉬면서 설이 몸을 조금 비틀었다. 따로 묶인 후 다시 한데 묶인 두 사람사이에 조금의 거리가 생겼다.

"그럼, 당신은 그대로 얼어죽으세요."

그녀는 냉소도, 체념도 아닌 말로 그의 마음을 건드렸다.

"나는 죽더라도 조금은 더 걸어보고 생각하겠어요..."

무거운 그의 체중을 그녀는 감당하면서 조금씩 남쪽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엉겁결에 우정도 따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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