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설을 우악스럽게 붙잡았고, 총탄은 그녀를 잡아챈 독립군의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놀랄만한 우연이었고, 또한 불행이기도 했다.

"무슨 짓이오!"

그의 허름한 복장을 보고 독립군 중 하나가 외쳤다. 아마 옷차림만으로 그를 단순한 승객으로 보았을 터였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우리에게 총을 겨눈 것이오?"

독립군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그에게 물었다.

"아, 저 아가씨는 제국에 충성하는 집안의 딸입니다. 나는 그 집에 빚이 있는 독립군입니다."

그의 순간적인 계략에 설과 한두는 아득해졌다. 한두는 일을 하라고 건네받았던 쪽지를 찾았지만, 그 쪽지조차도 그 옷에 들어있어 찾을 수가 없었다. 여유롭게도 하선생은 그 쪽지를 들고 흔들었다.

"여기, 대장이 내게 맡긴 쪽지입니다."

그가 내민 쪽지를 보고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가 대장이 되었군. 좋아. 좋소. 선생. 근데 저기에 있는 자는 누군가? 얼핏 보자니 신문명의 세례를 받은 친군거 같은데...약간 냄새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제국인에 대한 경멸감을 숨기지 않고 대장은 한두에게 다가갔다.

"당신 이름은?"

"...한두. 김한두요."

"거짓말도 잘하는 군. 당신 이름은 하우정이 아닌가."

하선생은 준엄한 어투로 한두를 꾸짖었다. 한두는 이내 반도어로 대꾸했지만, 워낙 긴 문장은 잘 말하지도 못한데다가 발음문제까지 꼬여 의심만 더 살 뿐이었다.

"이 친구가, 이 제국의 누린내나는 친구가, 그 유명한 반질거리기로 유명한 대륙의 하우정선생인가? 역시 실물은 보잘것이 없군."

"과연 그렇지요."

"그나저나 이 아가씨에게 너무 심하게 대했소. 김선생."

"...음란한 여자요. 음란한 문서로 저 나쁜 놈과 사통했소."

"이렇게 좁은 실내에서? 승객들도 있는데서?"

대장의 질문에 하선생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저 제국에 충성하는 자들은 그러고도 남는 자들이기 때문이오! 내가 증거를 보여드리지!"

그는 차체의 충격으로 한쪽에 날아가 있던 그 편지와 일기장을 꺼냈다. 부드러운 벚꽃잎은 짓눌려 납작하게 되어있었다. 

"이것이 바로 증거물이오!"

사랑은 떠나가버렸다. 오직 살겠다는 마음으로 하선생은 마음의 갈망과 사랑을 버렸다.
그들에 대한 미움과 증오만이 남아, 어떻게든 그들을 욕보이겠다는 감정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오로지 그녀의 잘못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었더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녀를 해꼬지는 아니했으리라.
하지만 결국은 그녀의 잘못이었다. 그녀의 잘못이고, 그녀의 시작이 그랬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아무도 다른 누구는 절대로 그녀를 갖지 못하리라.
오로지 그만이 그녀를 꿈에서나마 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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