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선생은 공기가 건조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눈을 떴다. 눈마저도 깔깔했다.
무슨 꿈을 꿨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의 자신의 경험이 말해주었던 나쁜 일이 일어나기 전의 위화감이 있었을 뿐이었다.
도대체 몇명을 죽였던걸까? 자신이 누이와 결혼하기 위해서 던졌던 그 양심, 그 양심위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그리고 지금 눈앞에 또 죽여야 할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묵주를 굴리며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무엇을? 자신의 책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있는가?
나달나달한 표지인것은 알겠으나 그것이 자신이 직접 만든 '일기'인지 아니면...
"깨어나셨군요."
제국어로 말을 붙이는 사내의 얼굴을 하선생은 의아한 듯이 바라보았다.
"3등칸에 있지 않았소?"
"네."
뭐,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싱긋이 웃으며 한두가 대꾸했다.
"거기 자리는 좀 불편해서요."
"호오."
이 배짱좋은 놈 보게...하는 심정으로 하선생이 다시 말했다.
"일부러 잠든 척 해서 풀어줬더니...그렇게도 감옥이 가고 싶은 게요?"
"...뭐, 도착하기 전에 3등칸으로 다시 가면 그만이니까요."
한두는 시침 뚝 떼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물론 하선생이 그를 일부러 풀어주었다는 이야기나, 자리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나 서로 거짓말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뭐, 그때까지 심심치는 않겠구료."
두 사람은 그런 농담따먹기를 하면서 설이 읽는 책에 집중했다.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그녀가 과연 [그]를 읽으려고 하는지 아니면 거부하려 하는지...서로가 거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하선생은 한두에게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 성경이 아니군."
한두가 중얼거렸다.
그랬다. 그녀가 읽고 있는 것은 [그]의 '일기'였다.
"드디어 성공하셨군요. 제국의 톨스토이 선생."
한두의 비아냥거림에 하선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이게 아니다.
뭔가 다르다...
그녀가...그녀가...
"저...홍설양..."
하선생의 말에 설이 매몰차게 대답했다.
"맛떼 구다사이!"(기다려주세요!)
"......"
그가 침묵하자, 그녀가 천천히 다시 말했다.
"기다려주세요...아직 읽고 있으니까요...좀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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