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이 백명에게 그 쪽지를 보여주었을 때 백명은 아연실색했다.
"화내지 말게."
대장은 그에게 말했다. 백명은 최대한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주먹을 쥐었다. 힘줄이 끊어질 것처럼 격렬한 피가 그의 몸 전체를 휘감았다. 근육과 힘줄이 강한 힘에 자극받는것처럼 그의 마음도 혼돈으로 마구 흔들려서 짜내지기 직전이었다.
"제 필체를 도용했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더더군다나 그 무도한 놈을 꾀어내기 위한 수작으로 가녀린 아녀자를 이용하다뇨!"
"독립을 위해선 가녀린 여자라고 넘어갈 수 있는 건 아니지...더더군다나, 그 아가씨는 현재 그 치가 호감을 많이 쌓으려고 하는 인물이니까...그녀가 우리 뜻대로 그 책을 가지고 온다면...다행아닌가...그 책에는 아마 그 치가 암살대상자로 삼은 인물들의 거처나 그런 것이 있을테니...아니면 중요한 친일파들의 행적이나 재산같은 것이 쓰여져 있을 거야..."
"그렇다면..."
백명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최대한 냉정한 기회주의자처럼 보이자...그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속내를 읽히지 않고...
그 작자는 자신이 편지와 일기를 읽힌 뒤 읽은 여자를 죽인다는 말이 있는 자가 아니던가...
순결은 최대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죽음만은 막아야했다.
"제가 그녀에게 직접 편지를 쓰겠습니다. 그녀의 약혼자는 저니까...제가..."
"오, 그럼 다행이군. 고맙네."
대장은 두툼한 손을 그의 어깨 위에 얹고 민가를 나섰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타다다당! 하는 총소리와 함께 대장이 뒤로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두툼한 눈위라 소리도 크게 나지 않았다.
"마적단이다!"
민가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민가의 반도인들은 독립군들을 독에다가 넣고 숨겼다.
얼마간 총소리, 불타는 소리, 외침소리가 이어지다가 이내 사라졌다. 숨어 있던 백명은 사태가 대강 수습되자 무리들을 불러모았다. 이제 대장은 죽고 없으니, 이 무리의 대장은 이제 백명이었다.
"다음 기차역은 어디인가?"
백명이 아까전에 연락책으로 나섰던 다음 기차역의 역무원에게 말했다. 그들은 제국의 역무원으로 일했지만, 독립군들을 지원하고, 몰아붙이는 듯 책략을 쓰기도 했다.
"다음 역은 엔바르입니다."
"거기서 다음 편지를 가져가게...대장님이 돌아가셨다고, 일이 추진이 되지 않으면 안되니 말이야."
백명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모았다.
'부디 천지신명이시여. 그녀를 구해주소서.'
그러나 그는 다음 순간 급하게 글을 휘갈길 수 밖에 없었다.
[그를 읽으시오. 나의 님이여. 그대의 순결한 마음만은 그것을 읽는다고 달라지지 않을 것이오. 결코. 왜냐하면 그대는 결코 더러워지지 않는 나의 눈이기 때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