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짓이요!"

뺨을 감싸진 우정이 외쳤다.
홍설이 가락지를 벗지 않고 때린 탓에 홍선생의 얼굴에는 가느다란 한줄의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이성이란 게 없는 게요?아가씨?"

"제 이름은 홍설입니다. 굳이 당신 식으로 읽는다면 코유키라고 불러도 상관없겠죠. 1등 국민은 그렇게들 부르니까요."

홍설이 냉랭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그녀가 문을 확 열어젖히고 나섰다.

"무슨 짓이요? 당신이 왜 그리로 가는 게요?"

하선생은 처음으로 다급함을 느꼈다. 여자에게 뒤쳐진다는 느낌은 기분이 나빴다. 그저 애정의 대상이 아닌 여자로서의 대상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우정의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저는 수녀원에서 임신한 소녀들을 돌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에요."

"수녀원? 임신한 소녀들?"

하우정은 자신에게는 익숙하지만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인듯 반응했다. 마치 잠꼬대를 듣고 있는 것처럼.
그 말에 어리둥절한 건 한두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서 갑시다. 한두씨."

그녀의 말에 우정이 벌떡 일어났다.

"안 될 말이요. 전문가도 아닌 당신이!"

"어차피 도와줄 생각이 없는 1등 국민은 앉아 계시죠."

홍설이 대꾸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선생의 팬이라 자처했던 노부인도 벌떡 일어났다.

"확실히 그렇군요. 하선생님. 저도 마침 옛날에 많이 그런 일을 했으니 이런 일은 여자가 더 잘 할 겁니다. 편안히 앉아 가세요."

"감사합니다. 어머님."

홍설이 미소지었다.

"어머, 천만에요. 홍설양."

처음으로 노부인이 홍설의 이름을 제.대.로 불렀다.
세 사람, 그리고 뒤이어 1등칸의 일본인 의사가 급하게 따라나갔다.

우정은 변절한 이래로 처음으로 철저한 고독을 맛보았다. 1등칸의 모두가 그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미안하오. 형님. 하지만...]

대장의 목을 따기 위해서 자던 대장에게 총을 쏘았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육혈포를 쏠 수 있지만, 첫발은 너무나 힘들었다.
독립군으로서 살다가 변절한 것이 달콤한 것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서. 오로지 살기 위해서. 2등 국민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기 위해서.
그들의 시선에 맞추며 살다보면 언젠가는 좀 더 나은 삶이 올거라고...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말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기차에서 죽었지.]

그의 교수, 그리고 그의 사촌누이의 남편이 말했다.

[임신중독증인데, 억지로 기차안에서 엉뚱한 사람이 도와준다고 나섰다가 그만...]

 [...안됐습니다...]

단지 그말만을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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