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참 많이 들었지요."

노부인이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많은 여자들이 당신에게 빠졌다는 이야기를 나는 경망스럽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군요."

"하하..."

이 주책많은 할망구가...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우정은 빙긋 웃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홍설의 냉랭한 눈동자.
홍설의 상기된 볼, 모던 걸이지만 좀 더 반도의 전통에 가까운 분위기...

"당신은 분명히 수많은 모던 걸이 반할 정도로 매력있는 분이에요. 유머감각도 있구, 아까전에 그 폭행탑승자하고 이야기할때 웃겨서 넘어갈 뻔 했다우. 홍설이라고 했던가? 그 아가씨도 제법 재미있었고..."

그의 매력이 홍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노부인은 그게 더 재미있는 듯, 하우정을 조금도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그러니까 확실히 흡사...나비와도 같아요."

전통적인 나비와 꽃 비유일까. 라고 생각하면서 하선생은 가소롭게 생각했다.

"밤을 노니는 부나비같은...그런 어두움이 섞인 화려함이 당신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네?"

하우정은 되도록 당황한 기미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언젠가 유혹하려다 실패했던 사촌누이는 그렇게 말했다.

[하우정. 네가 하려는 일이 부나비같은 짓이라는 걸 정말 모르겠니?]

[무슨 말이야. 누이. 내가 하는 일이 어째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넌...정말...]

잠시 숨을 고르더니 누이가 말했다.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네가 내게 하려는 일은...이건 패륜이야.]

누이는 그가 입힌 기모노자락을 걷어올리면서 말했다. 그가 그녀를 위해서 고른 기모노는 검정 바탕에 난초가 은은하게 은빛 잎을 촉촉히 내린 다소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더 나은 것을 골랐겠지만 그때만 해도 우정은 검은 것이 더 관능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한복이어도 검정색을 골랐을테지만...

[촌스럽게 왜 그래. 누이. 모던 걸이기도 하면서...그리고 섬제국에서 사촌끼리는 아무 문제가 없어. 결혼도 하는 걸...]

그는 누이에게 다가가 검정 기모노에 드러난 하얀 목을 쓰다듬었다.

[넌 나방도 아니고 나비도 아니지...]

누이가 뒤를 돌아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지금은 독립군이잖아. 그리고, 지금은 섬사람들 양식을 이야기하고...난 널 이해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어. 넌 반도인도 아니고 섬사람도 아니야.]

[누이...]

[넌 내게 정인을 소개시켜줬어. 그래서 네게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아. 다만...]

그녀는 검정 기모노 사이로 분홍빛 발을 내밀었다.

[네가 진정 사내라면 네가 진정으로 사랑으로 맺어지려는 부부 사이를 훼방놔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네 존경하는 교수를 내게 소개시켜 준 이상, 나는 이제 섬사람이겠지. 하지만 넌 반도인이고...우리 사이는 이미 멀어진 거야...법이 달라. 우정아...]

교수는 이내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촌누이를 제국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10년 후 누이가 임신중독증으로 죽을 때까지 그와 사촌누이를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아마...바이런이라고 그를 지칭했던 것은 그 사연을 알기 때문이었겠지...라고 그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하선생."

노부인이 말했다.

"그 귀여운 코유키양에게 너무 심술궂게 대하지 마세요."

"네? 홍설양 말입니까?"

"남자란 본래 좋아하는 사람에게 짖궂게 하는 법이지...특히 당신같은 자유인은 말이죠..."

노부인은 못 들은 척 천천히 강조점을 찍었다.

"...적어도 이번 여행에서 당신이 진심으로 사랑을 찾으면 좋겠군요. 대신 너무 귀찮게 굴지는 마세요. 코유키양이 긴장하니까요..."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하우정이 조금 반발심을 가지고 대답했다.

"홍설양은 연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 어린애한테 손대는 취미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문이 열리고, 홍설이 들어왔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전 더구나 딱딱한 사람은 질색입니다!"

일순간 홍설의 얼굴에 온기가 돌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발견한 하우정은 자신이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그 순간의 홍설의 얼굴이 그를 밀어내던 사촌누이의 얼굴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누이에게 거절을 당하던 이후 누이에게서 그 기모노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그 기모노는 항상 그의 가방안에 들어 있었다.

"검정에 은색 기모노에 조리..."

그는 그 순간 너무 홍설에게 그 기모노를 입히고 싶었다. 이미 년수도 지났고, 더 세련된 기모노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씀하신 것은 잘 알아듣겠습니다. 어머님. 하지만 전 꼭 검정 기모노에 은색 난초가 어울리는 여성이 아니면 마음이 가질 않는군요..."

그의 잠꼬대같은 말에 노부인이 심술궂게 웃었다.

"어머, 검정 미니 드레스도 모든 여인에게 잘 어울리죠,특히 그대같은 남성의 옆에 있을 여성은...더욱 잘 어울리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