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명은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히며 장군의 옆에 앉았다. 아까전까지 제국군과 전투한 여파가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오십의 장군은 호흡 하나 흐트리지 않았다.
"장군님."
"...왜 그러는가?"
장군은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그쪽으로는 얼굴도 돌리지 않았다. 백명은 설원으로 달리고 있는 기차쪽으로 한번 시선을 돌린 후 다시 장군을 보았다. 기차는 하얀 도화지위에 선을 남기고 달리고 있는 흑필같았다.
저기에 바로 그를 만나기 위해서, 반도에서 그와 결혼하기 위해서 대륙 저 끝에서부터 온 약혼녀가 있었다.
그녀로부터 이미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그녀가 저 기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점점 초조해졌고, 서열상 말걸기 힘든 장군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저 비열한 글쟁이때문에 굳이 저 기차를 막아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
장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들 장군이 기차를 공격한 이유가 그저 일본군의 금괴때문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변절자이긴 합니다만..."
"...네. 자네에게는 이야기를 해야겠군."
김진좌 장군은 조용한 어조로 여전히 백명에게는 시선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하우정은 단순한 글쟁이가 아닐세."
"...물론 대륙일보에도 글을 쓰는 인물이긴 합니다만..."
"독립군은 이미 여기저기에 많이 생겼고, 암살단도 많네. 그 중에 춘원을 암살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있는 마당에 반정을 해치우겠다는 계획이 문제가 있는가?"
"저흰 독립군입니다! 암살단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에 반비례해서 병력에도 문제가 큽니다..."
"다르다고 했나? 한명을 죽이는 거나 수백명을 죽이는 거나 다를 게 뭔가?...독립을 위한다는 점은 같네. 반정은 단순한 글쟁이가 아니야. 글쟁이이면서 스파이...그것도 대륙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정치꾼이라는 말일세. 그가 한때 독립군에 있었던 것이 바로 그것때문이라는 것을 모르겠는가?
그는 조국을 팔아 자신의 영달을 샀네. 그것도 우리의 기밀을 팔아넘긴 그 죄로 말일세."
"...하지만..."
"반정의 솜씨도 보지 않았나? 육혈포를 그 방향으로 쏴서 몇명을 사살했네. 지금 가는 목적도 반도의 친독립군 인사들을 취재기자라는 형식으로 만나 암살하려는데 있네. 이미 대륙의 인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네."
"암살자라고요?"
백명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자신의 일에 이득이 되는 일이기만 하다면 아군과 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무서운 상대일세. 친제국파인 홍기언 백작을 암살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까."
"홍...기...언. 백작을 말입니까?"
아득한 머리를 감싸쥐면서 백명은 중얼거렸다. 자신의 장인이 될지도 몰랐을 남자를 암살한 사내가 지금 약혼녀와 함께 있다...
그리고...그녀는 아까 전에 머물렀던 역사에서 자신에게 편지를 써서 남겼다. 그 편지에는 반정 하우정이 계속 치근덕거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김진좌와 그의 부하 몇명은 마적으로 변장하여 그 기차를 계속 뒤쫓아가고 있었다.
그랬기에 백명은 비록 아직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약혼녀의 부드러우면서 꼿꼿한 심성을 바로바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 남자가 약혼녀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서 알 수 있는 직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