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요. 저도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마님은 제 팔에 의지하고 쓰러져계셨고, 진주 목걸이는 알알이 떨어졌었습니다.
정말입니다요. 전 그 목걸이가 진짜인줄도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왜냐하면 마님과 노마님은 더 이상 재산이 없으셨기 때문이지요.
저한테 왜 그 진주 목걸이 알이 하나 부족한지 물으셔도 전 모릅니다. 전 몰라요.
그저 제가 다가갔을 때 마님이 쓰러지시면서 끊어진 진주 목걸이가 바닥에 흐른 것만 알 뿐입니다.
전 그저 주인마님이 이 저택으로 옮겨오시면서 따라온 종놈인뎁쇼. 단지 그것뿐인데, 왜 제가 이 말을 해야 하는 겁니까. 마님을 불러주십쇼. 마님앞에서 진심으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마님이 절 보지 않으시겠다고한다고요?
경찰 나리도 아시지요? 제가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까지도 턱짓으로 부려먹던 종놈을 왜 갑자기 안 보시겠단 말씀입니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쓰러지신 상황이야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만.
그 놈이 문제인 거지요. 그 놈이.
마님과 노마님은 사이가 좋은 고부지간입니다. 노마님은 특히 마님의 총명한 머리를 많이 의지하셨습니다...
아니, 단지 권력층으로 내려온 며느리가 무서워서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주인마님은 원래 저하고 오랜 시절 같이 지낸 막역지우같은 분이었습지요.
그랬던 주인마님이 고등문관으로 출세를 하자, 그 권력을 조금이라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인마님을 지원하던 한 부자가 이혼당한 딸을 주인마님에게 시집보냈고, 그 사람이 바로 마님입니다.
부부 사이가 굉장히 좋으셨지요.예? 그 목걸이가 3주년 결혼 기념일 선물이라는 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전 그게. 진짜인지도 몰랐다니까요...
4주년 되던 해에 마님이 피를 토하셨습니다. 폐병이었지요.
그래서 그 젊은 놈이 불려왔습니다.
젊은 외국인 놈이었지요.
파란 눈, 그 증오스러운 파란 눈이 아직도 기억 납니다.
그 놈은 밉살스럽게 지껄였어요.
"아름다운 여인이여."
조선의 대갓집에 왔다면 그 미인이 어떤 직위에 있는 것인지 뻔히 알 놈이!
"나와 함께 미국으로 갑시다. 내가 꼭 낫게 해드리겠소."
그걸 번역하던 놈도 웃기더군요. 저같으면 적당히 눙치고 말았을텐데 말입니다.
그 놈도 지원해주는 사람이 있었던지, 그 일을 일으키고는 이내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다만 처방은 기가 막혀서 이내 마님이 완쾌되셨지요. 하지만 ...
고등문관이신 주인마님이 그만 그 몹쓸병에 걸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후로 줄곧 제가 모셨습니다. 쓸만한 몸종없이 제가 두 분 수발을 들었지요.
"그래서 무엇이라고..."
그리고 그 놈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당신. 나와 함께 미국으로 갑시다."
언제 무슨 소식을 듣고 왔는지 그 놈은 끈질기게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에는 안채에 침입해서 마님의 오비를 잡아채더군요.
그래서 제가 도끼를 들고 그 놈을 몰아냈습니다.
"마님..."
오비가 약간 풀렸습니다만, 어쨌든 좋았습니다. 마님은 조그만 목소리로 고맙다고 하셨고, 저는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언제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짐승들이 새끼를 밸 때 자!이순간이다!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마님은 막 욕탕에서 나오신 후 머리를 참빗으로 빗고 계셨습니다. 저는 늘 그렇듯 살창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마님이 사용하시는 향가루가 온 방안을 어지럽혔습니다. 제 코는 아련한 그 냄새에 미쳐 날뛰었습니다.
후각이 먼저 선을 끊고, 그 다음엔 시각이, 그 다음에는 촉각이...
강간이라고요? 당치도 않습니다. 전 마님을 그 이후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주인님의 부인입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 이후로 그 서양놈은 계속 왔고, 전 갈수록 불안해졌습니다.
그 향가루가, 아니 마님의 하얀 목덜미가, 아니 그 체취가...
복숭아향 나는 그 체취에 그 놈도 미쳐 날뛰게 될까봐...
그래서 저는 마님을 지켜드리는 한편 감사의 눈초리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벌써 두 남편을 뒀던 분이니, 또 다른 남편에게 가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요.
그 맘때쯤 마님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이. 난 돌아가고 싶어."
"마님. 노마님은 어떡하시고는."
"그이가 돌아가신 후에는 이렇게 영락해버렸지 않아. 본토로 돌아가고 싶어...돌이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맨날 그 입으로 조센진! 하는 그 일본인들이 점령한 고향으로 돌아가라니요!
전 고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리고 마님은 이내 돌아온 그 외국인 사내를 방안에 들이시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병풍을 치고 대화하다가, 점점 사이가 가까워졌지요.
마침 그 외국인 놈은 히로시마에 연구소가 있어, 곧 일본으로 돌아간다 했습니다.
오비를 잡아채더니 대담성은 많이 없어지고, 점점 일반적인 정인의 분위기로 돌아갔습니다.
"아! 장갑째로 잘린 손목을 발견했다고요?"
아! 마님 목소리입니다. 어디 계십니까! 마님! 마님!
예. 제가 잘랐습니다. 그 놈이 마님의 목을 쓰다듬고 안는 것을 보았습니다.마님은 목걸이를 흩어 그 장갑끝에 달았습니다.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피터."
마님이 뭐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놈은 장갑 2개 중 한개에 달린 그 진주를 만졌습니다. 그리고 마님의 손도...
그런 것일까요? 일본 여자는 다 그런 요물이었던건가요...제 마음도 훔치고...그 놈의 마음도 훔치고.
오비가 풀릴 뻔했던 것도 다 연극이었을까요...
일본 것들은 다 요물인겁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마님을 보게 해주십시오. 아닙니다. 마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돌아오세요! 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