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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갑자기 나타났다.  그동안 날 애타게 찾았다고.
어떻게 찾았느냐고 묻고 싶지도 않았다. 넝마주이같은 아버지는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디 갔는지 찾았잖니."

누가 알려줬냐고 힘없이 묻자.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주인 할아버지를 가르켰다.

"저 사람이 알려줬지.  걱정된다면서 일부러 찾아왔더라."

나는 계산대앞에서 석고상처럼 굳어 있는 할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조금의 변명도 비난도 없었다. 그저 우리를 맞아드렸을때의 담담함만 있을 뿐이었다. 어른들은 다 똑같다.

"아기가 있다고? 애아빠는 부잣집 자제라면서..."
"당신하고는 상관없잖아!"

피를 흘렸던 그때 나는 잠시 남편의 눈물을 보았다. 아이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학생으로서 힘든 그런 눈물.
그는 부잣집에 사니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난 그 점이 분했다.
그래서 그 이후,  그는 다시 자취집을 구하고,  나는 가게에서 아이를 봤다.


"왜 상관이 없어. 넌 아직 내 딸이야."

"난 결혼했어."

"결혼하면 다 어른이냐?"

비실비실 웃으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넌 모르는가본데 부모 동의 없이는 혼인신고가 안돼."

제길. 아직 고등학생이라서 언변이 그렇게 유창하지가 않다.  더더군다나 나는 아직... 

"애는 어디있냐?"

"그걸 당신이 알아서 뭐하게!!"

"난 그애 외할아버지야."

점장 할아버지는 마치 깎아놓은 조각상처럼 말이 없었다.  시끄러우니 밖에 나가라던지, 조용히 좀 이야기하시죠. 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가게에는 마치 이런 일이 있기를 준비라도 했었던 것처럼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애아빠는 언제 오냐?"

"그건 알아서...왜! 돈이라도 뜯으려고?"

애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걸로 봐서 어디 부딪힌 것 같았다.  내 귀에는 엄마! 엄마! 아파! 아빠는 어딨어! 이렇게 우는 것 같았다.

"그래. 역시 내 딸이구만. 돈은 사는 데 참 필요한 거야. 그렇지?"

"....."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집 부모하고도 이야기했다. 애아빠 말을 들어봐야 된다고 하더만."

"뭐!"

그리고 가게 문이 열리면서 맵시있는 옷을 입은 한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애아빠의 어머니구나...

"아 어서오시죠. 사돈. 손자부터 보셔야죠?"

아버지의 말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니오. 간단하게 본론부터 이야기하고 저는 가겠습니다. 저희 애가 어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 선생님 덕분이죠.-여기서 그녀는 점장을 힐끗 보았다.- 애는 입양을 보내고, 아가씨? 아가씨도 얌전하게 집으로 돌아가. 애는 걸림돌이 될테니, 다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학교를 가...내가 추천서를 쓸 수 있는 학교가 있어요..."


흔한 막장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 같은 뺨. 후려치기, 거액의 돈 제공.  그런 건 없었다.
그야말로 실질적인 이야기 뿐이었다. 감정이 없어서 더욱 냉랭한.
물론 돈 제공은 이미. 했을 테지만.

"아, 엄마..."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애아빠.

"이야기. 다 끝났다. 동훈아. 집에 가자."

"저기, 아기는?"

"좋은 곳으로 보내줄거야."

"선애는? 선애는 어떡하고."

"넌 아직 미성년이야."

그녀는 그렇게 딱 잘랐다. 

"아버지 재단에 얼마나 손해를 끼치려고...고집 그만 부리고 가자.  이런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계속 일해서 돈을 얼마나 번다고..."

점장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인맥이 있어서 그동안 꼭꼭 숨겨놨던 우리의 인적사항을 알아내고 이렇게 보내는 것일까.

그는 천천히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나는 이때껏 헛꿈을 꾼 것이었다.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헛꿈을...

"그럼 제안 동의하신 걸로 알고 가겠습니다.  가자."

자전거를 같이 타던. 남편은 없는 것이다. 몇달동안 아르바이트로 근근히 같이 끼니를 이어가던 남자도 없는 것이다.  다만 애아빠였던 한 학생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도움 고맙습니다. 강사장님."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여전하시네요. 그 실력은..다시 활동하시는 것 보고 싶었는데..."

"......"

할아버지는 천천히 말했다.

"그냥 아직 힘들거라고 생각해서 연락드린 겁니다.."

"언제 다시 모임에 다시 나오시겠죠?"

"때가 되면요...."

강사장이라고 불린 할아버지는 그 모자가 나가고 난 뒤에도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손님들이 다 나가고,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상대로 협잡질을 하는 동안에도 한일자로 다문 입을 풀지 않았다.

"할배.."

아버지는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보기보다 돈 많은 것 같은데...애들 부려먹고 하느라고 돈 톡톡히 벌었겠어? 그 돈 다 내놔. 지금 손님이 아무도 없으니까..."

나는 소리를 질렀다.

"하지마!"

"왜 너도 원망스럽지 않냐? 저 여자는 애를 멀리 보내겠다고 했어! 네 자식이잖아!! 저 여자 손자기도 하잖아!!  근데 중간에 협잡질 한 놈이..."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아버지는 혁대에 차고 있던 뭔가를 휘둘렀...
아니, 휘두르기 전에 한 억센 손이 그 손을 붙들었다.

"그만하시죠."

그 사람은 정신이 이상해져서 도망갔다던 아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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