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도 당신은 나를 미워할 건가요?
그녀는 그렇게.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
나는 그렇게 편지를 썼다.
그녀는 연필로. 꾹꾹 눌러썼다.
그건 실수였어요.
아니 질투겠지.
나도 데생하던 연필로 눌러. 썼다.
그러니 제발..
오해하지 말아줘요.
나는 당신을...
나는 거기까지 읽고. 편지를 내려놓았다.
아니,  난 당신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냐.
미워하지도 않아.
단지 멀리하고 싶을 뿐.
예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해서 감정까지 사라지진 않을테니까.
아내가 죽은 이후로 다른 여자를 사귀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것도 당신이 아내의 죽음에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
나는 편지를 눌러서 봉했다..
어느 누가. 잊을 수 있겠어..
그 끔찍한 순간을..
당신은 아내에게 폭언을 퍼붓고 있었고
아내는 온 몸으로 당신의 말을 정면으로 받아내야했지.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이 도둑 고양이! 내 작품도 훔쳐가더니 이제 그 사람까지 빼앗아 가는 거야!! 도로 내놔. 그 사람도 내 그림도..."

하지만 이제 당신은 알아야 해.
그녀는 날 빼앗은 게 아니야. 내가 그녀에게 이끌렸지.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도 끌렸어.
당신도 날 사랑했겠지.

아내는 자살했지만 그건. 당신에게 도둑고양이라는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다만 억울함을 못 이겨서였어,
그녀는 그 그림을 빼돌리지 않았어.
어느 누가 그 그림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겠어?

나는 당신을 사랑해.
아니, 당신의 그림을 사랑해.
당신의 작업실에 있던 그 완성작은 내가 들고 나온거니까.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아니, 내가 당신을 미워한다고...
그런 자기비하적인 이야기는 그만둬..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다만 그저...

그녀는 천천히 거실로 들어와  뜯긴 봉투를 열었다.

너무 늦었어요...

그리고. 활짝 열린 창문에서 부는 바람이 자신의 그림을 핥아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늦었어요.
사랑하기엔 너무 늦었고,  증오하기에는 너무 빨랐어요.

그의 주변에는. 수면제가 흩어져 있었다.
그의 늙은 몸은 수면제를 이겨내지 못했다.
 

늦게라도 말해도 되나요?

그녀가 그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알고 있었다는 거 당신에게는 끝까지 숨기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당신을 사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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