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는 악몽을 꾸다 일어났다. 이때까지 담이 크던 그 답지 않은 일이었다. 꿈에서 어머니와 도망치고 있었다.
누구에게서? 바로 동생에게서...
그는 바지 주머니를 만졌다. 항상 들고 다니던 어머니의 사진을 그는 꼭 쥐었다. 바스락거리는 사진이 부서질거라는 생각에 잠시 그는 손가락을 폈다.
그리고 그의 코가 움직였다. 잠시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챘다.
"불이다."
그는 민감하게도 자신의 바로 옆방에서 불기운이 있음을 감지했다.
불은 이제 문을 핥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입구가 막혔으니 방법은 한가지였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린다.
2층. 그나마 2층인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문밖을 바라보던 그는 그 창문 바로 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포진해있는 걸 알았다.
아직까지 불이 크게 번지진 않았다. 그리고 소리지르는 사람들도 없었다.
"나만 남겨두고, 다 내보냈군."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적은 둘이었다.
길준과 병률.
그 어느쪽이든 그는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그래, 어느쪽이라도 좋다. 뛰어내려가주지."
털보는 눈을 가리고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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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는 유치장에서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기 싫고, 말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곧 모든 것을 말해야 하리라.
길준이 시키는 대로...자신이 바라던 대로.
"나가자."
경찰이 자신을 끌어냈다. 강렬한 백열등이 눈을 강타했다. 흰색 흰색 흰색.
하얀 감각이 귀에까지 전해져왔다. 찌잉. 하고 울리는 그 느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까?"
"...걱정 마. 별 거 아니니까."
루가는 면회실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예전에 한번 만났더 남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이름은."
그 남자가 이름을 밝히기 전에 루가가 말했다.
"호두원?"
"......"
호두원은 말을 하는 대신 루가를 노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으로는 건방지구나. 아들아."
"난 당신 아들이 아니니까요."
루가는 억지로 비웃듯이 말했다. 호두원이 누군지 몰랐다. 그 남자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복수해주고 싶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그래. 아들이 아니었지."
호두원은 놀랄 정도로 긍정했다. 그리고 살짝 이빨을 드러냈다. 야수같은 얼굴이었다.
잡아먹힐까봐 겁먹을 정도로 그런 얼굴이라고 첫만남에서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다. 널 위해서든, 날 위해서든 이제 이 혐의를 벗어야해."
호두원이 왜 그렇게 필사적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루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되었다."
호두원이 신문을 하나 들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한번 읽어봐라. 왜 그 남자가 널 이용하는지 알 수 있을 거다."
"날 이용한다고?"
"널 이용해서 날 무너뜨리려는 게 그 남자의 술수야. 누군지는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왜 당신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거지요?"
경찰이 흠흠 소리를 냈다. 예정된 시간을 초과한 모양이었다.
"알았네. 이내 돌아가지."
호두원이 루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잘 생각해봐라. 아직 시체가 나오지 않았으니 넌 유죄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