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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건은 서서히 눈을 떴다. 따끔거리고 아픈 것이 눈인지 아니면 몸 전체인지 알 길이 없었다.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눈에 무언가가 씌워졌다는 걸 깨달았다.
희미한 빛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여긴..."
어디냐고 묻기 전에 심각한 통증이 배에 느껴졌다. 누군가가 그의 배에 주먹을 꽂아넣었던 것이다.
맷집이 제법 되는 그에게도 꽤 강한 통증이었다.
"어디냐고 묻기 전에 네가 한 일을 생각해라. 죽기 전에 좋은 일거리가 될거다."
"...아...루가, 루가는 어디에..."
다시 주먹이 그의 명치를 강타했다.
그는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윽하는 소리를 내면서 짚더미라 추정되는 곳 위에 누워버렸다.정신을 잃은 며칠 동안 식사도 하지 않은데다가,눈이 보이지 않아서 고통이 더 배가되고 있었다.
"그 사생아놈은 왜 찾는 거냐."
발음이 명확하지 않고 약간 어눌한 것으로 보아 한국 사람은 아닌 듯 싶었다.
"...당신은...당신은...한국 사람이 아니군."
진건의 말에 그가 바닥에 퉷 하고 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외국인이면 뭐 어쨌단 말이냐. 나는 적어도 인신매매하는 순종놈보다는 더 귀하신 몸이야. 널 여기까지 데리고 오느라 온 몸이 더러워졌어."
"날 죽이지 않았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앞으로 식사는 가져다주지 않아도 되겠군."
진건은 자신을 가격할 때의 루가의 얼굴을 보았다. 귀가 약간 들리지 않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온 힘을 다해서 가격한다면 자신은 그대로 죽었으리라.
내리치는 소리는 귀로 들을 수 있으니까...하지만 루가는 빗맞췄고, 그는 그대로 차 시트를 더럽히면서 질질 끌려갔다. 그 기억도 선명했다. 하지만 눈은? 언제 이렇게 고통을 입었던가?
"내 눈에 씌인 걸 좀 벗겨주면 안되겠나?"
"별 희안한 소리를. 그거 독이 묻어 있는 천이다. 이미 중독되어 있어. 벗겨봤댔자 실명되는 건 변하지 않아."
눈 두개에 귀 두개.
진건은 루가의 귀를 생각했다. 그때 부은 약물로 루가는 귀가 먹은 채 병률에게 팔려갔었다.
"속죄를..."
문이 열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났다. 눈이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상대방은 조용히 그의 목에 뭔가를 걸어주었다. 손으로 만져 감촉으로 알려고 했지만 오랜 시절 눈으로만 살아온 그로서는 그 조각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중독되어서 눈이 보이지 않는거라면..."
진건이 조용히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익혀 왔던 습관대로 이 살벌한 분위기에 쉽게 적응했다. 물론 이야기만 하면 때릴 준비가 있는 상대가 있는 상태라도 마찬가지였다.
"이 답답한 천 벗겨주시지 않겠습니까? 잠깐이라도 이 조각품을 보고 싶군요."
그러자 그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천천히 진건의 눈에 덮힌 천을 치워주었다.
그리고 진건은 자신이 어느 석공의 작업실에 부러진 날개들이 가득한 방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목걸이 모양은 바로 그 부러진 날개 모양이었다.
그가 루가에게서 감금당한 바로 그걸 상징이라도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