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묻힌 강아지를 발견했던 건, 그저께의 일이었다.
나는 두번 생각할 필요 없이 강아지를 안아들었다.
건조한 피부에 닿는 강아지의 따뜻한 온기가...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만들었었나보다.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오빠의 차가운 시선과 마주쳤다.
오빠의 눈은 먼저 내 머리를 , 그리고 강아지를 든 손으로 향했다.
아무말도 하지 않는 오빠를 보고 나는 그대로 문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밖의 누구라도 이 강아지를 보고 키워주지 않을까 싶어서 폐물들을 뒤져서 사과박스 하나를 구했다. 그리고 못 입는 옷을 깔고 강아지를 넣었다.
그리고 예전에 하나쯤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구입했던 강아지 사료를 물에 불려서 조금 넣어주었다.

그리고 돌아오자 오빠는 눈으로 저녁상을 가리켰다. 새언니가 차려놓은 밥상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만큼이나 홗실한 식어감이었다.
나는 앉아서 기계적으로 씹었고, 삼켰다. 밥먹는 시간동안 그 강아지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나는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 강아지를 보러 나갔다.

강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사료를 먹다가 토했는지 피섞인 토사물이 옷위에 튀어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병원비를 지불하기에는 얼마 전 직장을 그만 둔 사람은 감당도 할 수 없는 액수였던 것이다.

언젠가 한번 오빠에게 농담을 던진 적이 있었다.

"오빠. 이 사진 이쁘지 않아. 웰시 코기래. 영국왕실에서 키운다는..."

"왜 키우게?"

오빠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그건 생각 안해봤는데..."

"직장 가지면 생각해봐."

어떻게 보면 그때는 참으로 여유로운 시기였다. 오빠는 아직 직장을 다닐 때였고, 나도 막 취업시장에 뛰어든 철부지였기 때문에 행복감이 넘쳐 흐르진 않아도 적당했다.

"오빠...돈."

오빠는 지금 시급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40대에 잘린 직장인이 갈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강아지 병원비 하려면 너부터 병원가라."

오빠가 싸늘하게 말했다.

"지 앞가림도 못하는게 무슨 강아지 병원비를..."

오빠는 알고 있었던 걸까...내가 그 강아지를 박스에 넣은 걸...

"..오빠..."

"나 나간다. 여보. 희주 일어나면 유치원 보내는 거 잊지마."

그렇게 당부하고 오빠는 나갔다. 나도 늘 그랬던 것처럼 점퍼를 입고 귀에 이어폰을 낀채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취직공부라고는 하지만 늘 그랬던것처럼 떨어질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오늘은 땡떙이를 치자고 자신에게 말했다.
강아지가 병원에 가야하니까. 오빠가 돈을 안 대줘도 돈은 빌리면 된다..
카드빚을 좀 지면...


박스를 찾아보니 박스는 있지도 않았다. 다만 넣어놓았던 지하실에는 누군가가 또 갖다놓았던사료 부스러기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가 데려갔나보다. 다행이다.
나는 중얼거리면서 달려갔다. 중얼거림은 곧 노래로 변했다.
누군가가 데려갔어. 아픈 아이를 데려갔어.


마치 죄책감이 그날로 사라져버린 것처럼 나는 기운을 냈다.
곧 써낸 원서 몇개가 3차까지 통과했고, 나는 슈퍼맨 놀이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나는 그것이 강아지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5개의 이력서 중 남은 건 2개 뿐이었다. 면접에서 날 뽑지 않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한 사람들도 있었고, 대응을 늦게 해서 빠진 것도 있었다.
그래도 난 희망적이었다.

"안됐다."

흥얼거리면서 파를 다듬고 있는데 오빠가 불쑥 말했다.

"뭐? 아직 2개 남아있어."

그말에 오빠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알았다."

오빠의 시무룩한 말투에 나는 늘 그래왔듯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면접공부를 앞에 뒀던 탓에 나는 강아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최종합격 통보를 앞둔 날, 나는 전화를 기다리면서 아파트 앞을 산책했다.
오빠가 일에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시끄러운 아파트 방송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음식 쓰레기 넣는 통에 고양이, 강아지 사체를 던져넣지 마세요."


그 말에 나는 정신없이 울었다. 언제 그 강아지 시체를 보았는지 내가 기절을 했었는지 어쨌는지 기억도 안난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착한 수위아저씨와 오빠와 내가 강아지 시체를 땅에 묻었을 때였다. 누군가의 칼질로 목이 반쯤 잘린 강아지의 머리를 묻을 때 오빠가 말했다.

"너 최종 합격했더라..."

시금털털한 맛이 나는 행복이었다. 나는 고개를 까닥하고 눈물을 흘렸다.
오빠가 내 어깨를 탁탁 두들겼다.
누군가를 구해줄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때로는 구하기 전에 손을 내미는 것은 최악의 실수다. 결말을 책임질 수 없다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 때로 인생은 그런 폭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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