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찌른 칼을 땅을 떨어뜨린채 그는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굳어진 몸으로 그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말을 해야 할 필욘 없겠지만...”
부당한 질문에 거부한다. 그는 그 원칙이 있건 없건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그에겐 아내를 살인한 것이 서커스단이 문닫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니까.
그에겐 아내가 서커스단이었고, 서커스단이 아내였다.
그런 그가 어째서 아내를 죽였는가 하는 문제.
“의상을 챙겨 입고서...”
레온 카발로의 팔리아치라도 들었단 말인가.
나는 흠칫 하면서 그를 돌아보았다.
벌겋게 칠한 입술에는 아내의 상처에 입을 갖다대 피가 여기저기 번져 있었다.
그래서 그가 상처를 입고 아내를 껴안았는지, 아니면 아내의 피가 그에게 묻었는지 헷갈렸다.
“헛소린 그만둬요. 차라리 입을 다물지.”
나는 그의 등을 손으로 탁 치고는 다른 사람들을 주위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 늙은 피에로는 정녕 망녕이 든 것이란 말인가?
하긴 그랬으니 그의 아내가 다른 연인을 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는 유명한 서커스단원이었다. 시대가 이토록 저물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지나치게 첨단화 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는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아니, 지금도 부유한 편이긴 하다. 하지만, 그는 말그대로 장인이며 딴따라였다. 다른 길은 찾을 수도 없었고 찾을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시대는 어떤가. 이젠 기계 로봇들이 아크로바틱한 모든 동작을 소화한다.
그랬으니 사람몸으로 하는 거야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 건 당연했다.
그는 침울해 했고, 젊은 아내를 사들여 그녀를 뛰어난 수입원으로 삼으려고 시도했다.
미리 말했지만 그는 돈은 많았기 때문에, 그녀가 딱히 못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장인이었다. 젊은 아내에게 혹독한 스승이었고, 그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곧 남편을 따라잡았다.
그녀는 공중그네를 탔고, 남편에게 수천가지의 마술을 전수받았다.
그의 서커스단도 어느정도 눈길은 끌어야 했기에 공중그네의 아내 파트너는 로봇이 맡았다.
근데 그 로봇이 말썽이었다.
이 사건을 맡기 얼마 전부터 그로부터 요청이 들어왔다. 로봇이 지나치게 아내에게 친밀하게 군다는 것이었다.
로봇은 로봇이니 내버려두라고 말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고, 얼마 뒤에는 팔아버리기까지 했다.
그게 2주전.
아내와의 말다툼은 날이 갈수록 격해졌고, 그는 공적인 자리에서 아내를 더럽고 추악한 로봇성애자년! 이라는 욕설을 퍼부었다. 아내는 눈물을 좀 글썽이더니 이내 남편을 향해서 한숨만 쉴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말을 이었다.
“정말 극에서처럼 버림받은 모양새군요. 여보. 당신 로봇한테 진짜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죠? 생각대로 되어서 정말 좋겠군요. 극하고 사실을 구분도 못하는 당신이 한심하지 않아요?”
며칠 뒤에 있을 공중그네에서 그녀는 파트너 없이 모든 동작을 소화했고, 극을 시작한 후 얼마 안되어서 칼로 찔려서 사망했다.
극은 그 뛰어나고 음흉한 그 영감에 의해서 팔리아치의 극중 극을 각색한 내용으로 꾸며졌다. 아마 그 감정을 억누르고자 그는 엄청나게 노력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노망난 뇌는 현실과 과거, 그리고 미래를 엉크러뜨렸다.
그는 장난스레 다가오는 젋은 여인 역의 아내의 심장을 정확하게 찌른 후 이내 쓰러지는 아내의 몸을 붙잡고 피가 뿜어져 나오는 가슴에 입술을 댔다.
마치 피를 막으면 그녀가 살 수 있는 것처럼.
“그만해요.”
쓰러진 그녀에게서 피가 콸콸 솟아나왔다.
그녀의 연인으로서 마음이 안 좋았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광경을 이 노인에게 보여주면 더욱 충격받으리라.
“노인을 서로 호송하도록 해. 기자들 몰려오기 전에 노인네한테 말 너무 걸지 말라고 하고.”
나는 서커스 구경하겠다고 따라온 어린 순경에게 그렇게 노인을 맡기면서 말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두뇌는 컴퓨터 칩이 박혀 있는 뇌가 아니었다. 순수한 인간의 뇌.
그리고 그의 나이 올해 120세. 조그마한 충격에도 망가져버린다.
그는 헉 소리를 내고는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죽었는데요...”
순경은 그랬거나 어쨌거나 내 명령에 따라서 차에 노인을 실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연인이 누워있는 땅에서 연인의 찔린 상처안쪽을 만졌다.
물컹. 쪼그라든 심장을 손으로 한번 꽉 쥐고 놓았다가 다시 쥐고 놓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미지.”
그녀는 자신의 가슴의 갈라진 부분에 손을 갖다댔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남편은요?”
“......”
“그동안 몰랐을린 없었을 테고...미지. 그 남자는 정말 네가 로봇이라는 걸 몰랐던거야?”
“...저도 몰랐어요.”
미지의 넘버 ISRN 52-1930 형은 인간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진다. 다만 구형 의식을 선호했던 창작자에 의해서 하루에 3번 에너지 충전을 해줘야 하는데...
그 에너지 충전을 돈 아까워하는 그 노인네는 아마 직접 했을 터였다.
그렇다면 모를 리 없는 그가...
“너도 모른다고?”
“당신도 절 인간으로 대우해줬잖아요. 그리고 그는 충전을 하는 동안 제 전원을 꺼놓아서 제가 알 수도 없었구요.”
모든 현상이 사라진 뒤 그녀는 인간의 탈을 벗고 로봇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벨트에 감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 그녀에게 기브스하듯 매어주었다.
“이젠 필요 없어요.”
그녀가 낙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서커스의 디바가 아니라 한낱 로봇인걸요. 이젠 아무도 절 보러오지 않을 거예요.”
“난 아직도 널 사랑해.”
“그건.”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요.”
그녀가 덧붙였다.
“단지 주인이 바뀐 것 뿐이겠죠. 사랑이란 묘한 것이예요. 지난 사랑이 끝나면 새로운 사랑이 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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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는 서커스, 오마쥬는 팔리아치...
마침 팔리아치를 듣고 있었습니다...
실화에 바탕을 둔 거라고 하죠. 서커스단에서 연극을 하다가 아내를 죽여버린 어릿광대의 이야기라는데...그걸 좀 비틀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