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길준은 한나를 부르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꼭대기 위에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한나가 신나게 발을 흔들고 있었다. 그가 겨우 구한 붉은 기 도는 분홍신을  언제 버렸는지 맨발이었다.

"한나!"

"네."

한나는 혀를 쑥 내밀고 대꾸했다.
말괄량이도 이런 말괄량이가 없었다. 길준은 이때 처음으로 한나를 풀어놓은 것이 자신의 착오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려와."

"안 내려갈래요."

"한나!!"

길준은 화를 억눌렀다. 기껏  데려온 아이에게 일순간 화가 난다고 화를 내는 건 보호자로서의 행동에 어긋났다.
더더군다나 루가가 부탁에 부탁을 했던 것 아니었던가.
진건의 일처리를 위해서라면 한나가 꼭 필요했다.

"신발은 어떻게 했니?"

"몰라요."

길준이 멋있다고 꺅꺅 거릴 땐 언제고, 텔레비전도 자유롭게 볼 수 있고, 아이돌 공연도 신나게 볼 수 있게 되자(더더군다나 길준이 특등으로 끊어주기까지 하니...)더 이상 길준은 보지도 않고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가끔은 길준이 사다준 비싼 옷이나 신발을 퇴짜놓곤 했다. 마치 길준이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는걸 아는 것처럼.

"왜 이렇게 말썽을 부리냐..."

그래서 길준도 이때만큼의 옛날의 보통 청년으로 돌아갔다. 그것도 막내동생을 보는 오빠의 심정으로.

"흥! 오빠 잘못이에요."

"뭐가."

"그게 왜 페라가모라는 거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어요?"

"어? 그게..."

사실 그에겐 페라가모나 시장의 신발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버린거라는 거냐?"

"흥!"

"그 아저씨한텐 점심 갖다줬냐?"

"아까 전에 갖다줬지만 제대로 먹지도 않던걸요? 날 계속 쳐다보던데요. 변태같으니!"

"변태? 한나! 그 이상한 말은 누가 가르쳐줬니? 응?"

길준도 이 순간만큼은 품위있는 그림자의 부호역할을 버리기로 했다. 도대체가 진지해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하지만 한나를 계속 날뛰게 할 수 없는 것이 슬픈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 한나는 자신의 꼭두각시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모든일을 위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순간, 자신이 푼수가 되더라도 그건 그 순간만의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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