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률은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아내의 방이었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아내의 물품은 치우지 않았다.
도대체 이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몇명이나 죽어갔던 것일까.
하지만 그는 도저히 셀 수도 없었고, 그것을 위해서 눈물 흘릴 수도 없었다.
이미 시작한 일이니 끝을 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자신의 최대목표는 정치가들이 꿈꾸는 최고의 자리는 아니었다. 다만, 할 수 있을 정도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띠리리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병률은 건조한 목소리로 대화했다. 별 다를 거 없는 전화였다.
지역구에 문제가 생겼는데 갈 수 있는지 묻는 전화였다.


"갈테니 주민들 동향을 잘 파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몸에 피로가 심하게 느껴졌다. 이제 와서 겁을 낸다고 하면 우습지만, 그는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은미가 완전히 돌아서고, 자신이 변호사로 지목한 준명이 만약 반대편으로 가버린다면...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의회에 있는 동안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그 생각을 하면서 병률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선잠이 드려는 찰나 부드럽게 그의 등을 덮어주는 얇은 숄의 감각을 느꼈다.
깨어났을 때 그는 그것이 예전에 길준의 처가 자주 하던 숄이라는 걸 깨달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