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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명은 천천히 거울에서 시선을 돌렸다. 자기를 초대한 손님은 상당한 악취미를 가진 모양이었다.지역에서 나름 잘 나가는 유지라는 말에 초대에 응하긴 했지만 굉장히 불쾌한 방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흰 드레스셔츠에 가벼운 자켓을 입은 남자였다. 흰 드레스 셔츠는 청결하다기보다는 사람을 2차원화시키는 그런 느낌이었다.준명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고개만 까닥 하고 숙여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자만하는 것 같은 그런 태도는 손님이라기보다 상대를 시험하는 판사, 검사와도 같았다. 물론 그의 직업이 실제로 그러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제 검사를 그만두셨다고..."

가정부가 가져온 커피를 홀짝이면서 이준구, 아니 함길준은 역시 커피를 준명에게 건넸다.

"아메리카노로군요. 제 취향을 잘 아시는 듯합니다만..."

"아,조사를 좀 했거든요."

그 말에 준명의 얼굴에 잠시 어둠이 드리워졌다.

"도대체 뭘 꾸미는 분인지 모르겠군요...처음에는 명의를 바꾸고, 그 다음에는 사람 자체를 바꾸고...그 다음에 당신이 할 건 뭡니까."

"저는 이제부터."

길준은 그에게서 몸을 돌렸다. 창문에서 비치는 역광이 그를 위협적으로 보이게 했다.

"잠깐 상대에게 허점을 보여줄까 합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당신은 병률의 변호사입니다."

"아직 정하진 않았지만...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검사로서의 당신은 병률을 만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얼마 전 들은 소식에 당신이 모 재즈바에서 병률을 만났다고 하더군요..."

"...저도 나름대로 할 일은 있었으니까요. 당신. 의외로 범죄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흥신소 직원들이 죽은 것도, 그리고 명의가 그렇게 깔끔하게 바뀌는 것도 의심스러웠죠. 난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정의라는 형사가 가지고 온 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으니까요."

"병률은 범죄자가 아닙니까?"

"내가 확인한 바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확실하죠. 물론 당신을 잡다보면 이의원의 범죄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이의원이 하는 말만 의심해서는 계속 꼬리만 잡는 격이죠. 나는 객관적으로 당신 두 사람 다 잡아넣을지도 모릅니다. 우선은 과정이지만요."

"믿어도 될지 모르겠군요. 당신은 민변이나 당신의 위치도 오로지 출세만 위해서 사용하는 줄 알았습니다."

"물론 출세의 계단일지도 모릅니다."

홀짝. 하고 커피를 마시며 준명이 말했다.

"하지만...출세와 정의가 함께 하면 그것보다 좋은 결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어났다. 길준을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길준은 그 손을 잡지 않았다. 그러다가 준명이 남겨놓은 커피잔을 보고는 손뼉을 쳤다.

"에스프레소 한잔 더 하시죠.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더 할 말은 없으니 나가보겠습니다."

차디찬 태도로 준명이 말했다. 그리고 길준은 그의 뒤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정은미씨를 잘 부탁합니다. 정의와 함께 하기에는 마음이 여리니까. 당신이 꼭 필요할 겁니다."

"정은미씨가 아니라 당신에게 필요한 거겠죠. 이의원도 그러더니..."

준명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길준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여자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지금부터 확인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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