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는 자신이 복을 타고 났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의 성화로 사귀던 친구와 궁합을 보러간 적은 있었지만
합리적인 그녀는 얼마 안 있어 상대가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궁합이 좋다는 말에 이내 그녀에게 푹 빠져버린 상대방에게 비수를 꽂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건 얼마 전에도 있던 일이었다. 

아내가 죽었다는 상대에게 차갑게 관계를 끊겠다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건 그녀의 유일한 후회였다.
물론 병률은 좋은 상대가 아니다. 그는 이제 아내가 죽었으니 은미로 상대를 바꾸리라.

"여기 있었군."

정의를 기다리면서 앉아 있는 커피숍 의자 맞은편에 병률이 자연스럽게 앉았다. 이건 정의와 길준은 모르는 일이었다. 항상 상대방을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 자리에서건 병률이 앉아 있다. 마치 그녀가 있는 공간에 늘 출몰하는 원귀처럼.

"어, 놀라지 않는군."

"놀랄 사람이던가요. 당신이."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이런다고 바뀌지 않아요. 우리 사이."

"차가울 정도의 관계는 아니지 않았나. 너도 날 좋아했었고."

"...지금은 아니에요."

"여전히 그 몽상가 편인가?"

"몽상가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당신보단 낫겠죠. 그 사람은 당신처럼 이 남자,저 남자 막 이용하지 않아요."

"과연..."

일부러 놀리려고 온 듯한 분위기가 분명했다. 저런 태도를 취할 땐 항상 자신에게 위험이 가까이 다가올때다.
그의 정적들은 그의 그런 공격법을 조심하곤 했다.
그녀는 그가 일을 벌이기 전에 그녀를 찾아온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의 머릿속에 살지는 않는다. 그러니만큼 그가 자신의 머리를 살짝 보여줄 때가 얼마나 고마운지...

"다시 시작해보는게 어때?"

그의 말에 그녀는 숨을 죽였다.
이럴 때의 그는 배팅을 즐기는 도박사같다.

"당신은 빼고."

"아니, 준명씨랑 말이야. 그 친구는 앞날이 창창하니..."

"......"

그녀는 주스에 빨대를 대고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무시당한 걸 늦게나 깨닫는 3류 악당처럼 그는 미소지으면서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녀는 들이마신 얼음 알갱이들이 목을 건조하게 긁는 듯한 불쾌한 감정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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