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준은 최근에 기르기 시작한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자신은 옛날에 세상이 자신에게 너그럽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때와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게 있다면 돈이 있어서 더 너그럽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도대체 목적이 뭐길래..."
은미의 말에 그는 피식 웃었다. 마치 루가의 웃음을 복사붙여넣기 한 것처럼.
"나요?"
"네. 여기 당신하고 저 말고 다른 사람은 없잖아요."
"...흐음, 당신도 알 텐데요. 당신도 목적이 같을테니까."
그는 거울을 보면서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이 방에는 거울이 잔뜩 있어서 불쾌하다고 은미는 생각했다.
마치 베르사이유 궁전의 거울의 방처럼 벽에도 천장에도 화장대에도 거울이 잔뜩 있었다.
잘못보면 마치 다이아몬드로 된 방같기도 했다.
"루가에게 잘못하셨어요."
"...원하는대로 해줬을 뿐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길준이 대답했다.
"원한 게 다른 것일수도 있었잖아요."
"난 원한 걸 주는 것 뿐입니다. 능력이 모자라서, 원하지 않는 걸 안겨줄 정도는 아니거든요."
은미는 답답함을 느꼈다. 병률보다는 나은 인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찌라시스러운 처리방법은 그녀를 마치...그러니까 가두는 느낌이 들었다. 왜 지윤이 잠시 그를 떠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제가 원하는 것도 아시겠네요."
"아니오. 그 정도의 능력자는 아닙니다."
그리고 길준이 홱 돌아섰다.
"당신은 애초에 읽기 힘든 사람이니까요. 원하신다면 다시 그 놈에게 돌아가셔도 난 뭐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반은 맞네요."
은미가 천천히 말했다.
"전 잠깐 당신 곁을 떠나있겠어요. 잠시 정의씨와 일을 같이 해야 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제 힘만으로는 안되니까 당신의 도움을 좀 받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원하시는대로."
어깨를 서양식으로 으쓱하더니, 길준은 다시 거울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치 거울 중 하나에 자신의 진짜 모습이 있는 것처럼.